농협 퇴직 박병윤씨 한우 150마리 길러 연간 6천만원 소득
"농업 마이스터대 다니며 전문 소 사육 기술 익히는 게 꿈"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베이비부머 세대가 가진 게 뭐가 있었겠어. 퇴직하고 나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겠더라고…"
농협 충북본부에 다니던 박병윤(59)씨가 노후 생활을 설계하기 시작한 때는 14년 전인 2003년이다. 40대 중반의 나이일 때다.
27년간 직장생활을 한 박씨는 농협 자산관리회사 지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2년간 지내다가 올 2월 28일 퇴직했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박씨는 농협 간부를 지냈다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영락없는 축산업자로 변신했다.
10년 넘게 노후생활을 착실하게 준비한 덕분에 150마리의 한우를 키우며 연간 5천만∼6천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박씨는 '새벽형 인간'이다.
청주시 율량동 아파트에서 매일 오전 4시면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축사가 있는 내수읍으로 향한다.
4동이나 되는 큰 규모의 축사를 꽉 채우고 있는 한우 150마리가 그를 기다린다.
방역복을 차려입은 박씨는 동이 트기 1시간 전인 오전 5시부터 2시간 동안 4개 축사를 돌며 여물과 사료를 준다.
아침 일을 마치고 돌아설 때면 허리가 끊어질 듯 쑤시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땀과 함께 환한 웃음이 묻어나곤 한다.
박씨는 노후 생활을 준비하기 전까지만 해도 소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문외한이었다.
그런 그가 축산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농협 충북본부 검사팀에서 근무하던 2003년이다.
퇴직 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과수원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소를 키우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주변에 소를 키우는 축산업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금융 사고나 횡령·유용 등의 내부 비리를 통제하는 검사역을 맡고 있던 그는 2004년 2월 자진해서 축산지원팀으로 전출을 요청, 소와의 인연을 쌓기 시작했다.
농업 전문가를 초빙, 농가를 찾아다니며 컨설팅해 주는 게 그의 주 업무였다. 전문가들의 조언이나 노하우 전수는 박씨에게도 도움이 됐고 이때 착실히 공부한 것들을 바탕으로 축산농의 꿈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박씨가 축산업에 도전한 것은 축산지원팀으로 자리를 옮긴 직후인 2004년이다. 당시 그는 육우(수컷 젖소) 60마리로 노후 생활을 위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지인의 도움도 컸다. 소 600마리를 키우는 이웃 축산업자는 소를 사고 파는 법, 축사 짓는 법을 손수 가르쳐 주는 등 멘토를 자처하고 나섰다. 박씨가 별다른 고비 없이 축산업자로 변신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축산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시행 착오도 적지 않게 겪었다.
기존 축사를 하나 장만했는데 길이 없어 차가 오갈 길을 손수 닦았는데 길이 울퉁불퉁하다 보니 소를 실은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달아난 소들을 잡느라 온종일 뛰어다니느라 입에서 단내가 났던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박씨는 육우 사육은 노후 생활 준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우보다 3∼4배 많은 사료를 먹는 탓에 18∼20개월 키워 출하해도 수익은 마리당 5만원에 불과했다.
박씨는 "한우는 30개월 키워야 하지만 육우는 18개월이면 출하가 가능해 회전율이 빠르지만 수익이 극히 적다"며 "육우는 대규모로 사육해야 하는데 60마리로는 승부를 걸기에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축산업에 뛰어든 초기에는 농협에 다니면서 소 사육을 부업으로 삼았던 터라 소득이 많지 않은 것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는 2010년 사육 품종을 육우에서 한우로 전환, 승부수를 띄웠다.
그해 들여온 한우는 새끼를 낳기 위한 암컷 20마리였다.
그렇게 본격적인 노후 생활 준비에 나선 그는 새끼 수컷은 키워 출하해 종잣돈으로 삼으면서 암컷은 팔지 않고 증식에 매달렸다. 사육할 소를 늘려나가는 것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150마리로 늘어난 지금은 7개월 된 송아지를 경매를 통해 처분하고 있다. 마리당 410만원 정도에 팔리는데 연간 소득은 5천만∼6천만원에 달한다.
아침에는 박씨가 축사를 찾아 소를 돌보고 저녁에는 그의 부인이 소 여물을 주며 자식처럼 정성을 쏟고 있다.
정성껏 소를 키운 덕분에 구제역도 이 농장을 덮치지는 못했다. 2014년과 올해 1월 터진 구제역으로 충북 전역에 비상이 걸렸지만 박씨의 축사는 안전지대였다.
이웃의 도움을 받아 축산업에서 자립할 수 있었던 그는 이제 주변에 축산 기술을 전수하는 멘토를 자처하고 있다.
한 친구는 박씨의 축사 1동을 빌려 소를 키워 4년 만에 30마리로 늘려 '분가'했다.
남들에게 사육 기술을 전수할 정도 노하우를 갖췄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이뤄야 할 꿈이 남아 있다.
2년제 평생학습 과정인 농업 마이스터대학에서 체계적이고 더욱 전문적인 사육 기술을 익힐 계획이다.
그는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한 눈에 어디가 아픈 지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의 식견을 갖춘 축산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축산업은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어가는 장치 산업이다.
땅을 사고 축사를 짓는 데만 6억원 정도 들어간다. 7개월 된 한우 1마리당 400만원으로 잡아도 100마리를 키우려면 4억원이 추가로 든다.
그는 "적은 마릿수로 시작했기 망정이지 처음부터 많은 소를 키우려고 욕심냈다면 벌써 포기했을 것"이라며 "미리 착실히, 장기적으로 노후를 계획하는 게 좋으며 과욕은 절대 금물"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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