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주도로 준비위 구성…일곱 유가족 참여해 활동 착수
(부산=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1923년 일본 도쿄 등 간토(關東·관동) 지역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인 6천여명을 집단 살해한 간토 학살 사건의 희생자 유족들이 진상규명과 배상을 요구하기 위해 유족회를 만들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희생자 유족회'는 30일 오후 부산시 남구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발족식을 열고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그간 강제동원 피해자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원폭 피해자의 유족회나 단체는 있었지만 간토 학살 관련 유족회가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다.
이번 유족회에 참여하는 유가족은 일곱 가족이 전부다.
이들 가운데는 연합뉴스가 목격과 증언 등을 토대로 추적해 2014년 피해 사실을 확인한 조묘송(제주) 씨 유가족과 일본에 있는 묘가 뒤늦게 세간에 알려져 화제가 됐던 강대흥(경남 함안)씨 유가족도 포함돼 있다.
간토 학살 희생자 조묘송 씨의 손자인 조명균(63·제주) 씨는 "할아버지의 형제 다섯분이 일본 경찰서에서 피살됐다"며 "아버지에 이어 손자인 제가 진상을 규명하는 일을 이어받고자 한다"고 말했다.
희생자 수보다 유가족이 턱없이 적은 것은 관련 진상조사와 연구가 부족해 대부분의 희생자 유족들이 부모·친척의 간토 학살 피해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관련 조사 기구도 없어 간토 학살 다큐멘터리 영화 연출자인 재일동포 오충공(62) 감독을 비롯한 활동가들이 발품을 들여 피해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찾으러 다니고 있다.
오 감독은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데도 한국 정부가 간토 학살의 희생자 유가족이 누구인지 단 한명도 명확하게 발표하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한일 정부에 간토 학살 진상을 조속히 규명하고 국가가 나서 다른 피해자들을 찾는 데 힘을 쏟으라고 촉구할 계획이다. 유골 봉환과 배·보상 등 조치도 요구한다.
유족들은 이날 오전 희생자들이 마지막으로 밟은 조선땅인 옛 부산부두 인근 수미르공원에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제사를 지내며 조상들의 넋을 기렸다.
간토 학살은 1923년 9월 1일 간토 지역 대지진이 일어나 40만명이 죽거나 실종된 이후 일본 정부가 국민의 분노를 돌리려고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고 약탈을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자 일본인들이 조선인 6천여명을 집단 살해한 사건이다.
올해 6월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열두 번째 영화인 '박열'의 배경이기도 하다.
19대 국회 여야 의원 103명은 2014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를 설치하는 특별법안을 발의했으나 결국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강제동원 관련 기구인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간토 학살 조사에 도움을 줬지만 이마저 2015년 말 해산했다.
발족식에 참석한 일본의 시민단체인 '관동대진재시 조선인 학살의 사실을 알고 추도하는 가나가와 실행위원회' 야마모토 스미코(78·여) 대표는 "유족회 발족을 계기로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간토 학살의 사실을 명백하게 하는 것에 힘을 합치겠다"고 말했다.
'구마모토 지진의 헤이트스피치를 용서 안 하는 회'의 마쯔오 카세츠코(65·여) 대표는 "아직도 간토 학살에 대해 일본은 해명이 없고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있다"며 "일본인으로서 조선인 희생자분들에게 마음으로 용서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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