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1999년 경기 화성 '씨랜드 청소년 수련의 집' 화재참사,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2011년 춘천봉사활동 산사태 참사, 2013년 여수국가산단 대림산업 폭발참사, 2013년 태안해병대캠프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 2016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이들 재난사고의 참상은 아직도 우리 머릿속에 선명하다. 이런 크고 작은 재난사고 때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의료지원이다. 무엇보다 사고 현장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인명 구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난의료시스템은 국가 고유의 로드맵이 꼭 필요하다.
최근 새 정부 출범에 맞춰 국가 재난의료시스템을 점검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국내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재난 관련 국민건강에 이바지하자는 취지로 설립한 재난의학회가 주최하는 자리였다.
이 행사에서 보건복지부 담당자는 국가 재난의료체계 강화 방안을 내놨다.
법률 개정 및 확대를 통해 현행 26개인 재난거점병원을 올해 8월까지 40개로 늘리고, 재난의료 지원팀(DMAT)도 정부 주도에서 벗어나 권역별로 122개팀(656명)을 운영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올해 96억원이던 재난의료기금을 내년에는 5.2% 인상한 101억원으로 늘리겠다고 이 담당자는 밝혔다. 재난거점병원은 재난발생 때 재난현장에 1시간 안에 의료진을 파견하고 중상자를 수용해 치료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말한다.
하지만 이 발표 후 학술대회 현장 곳곳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살아서 돌아다닌다'는 말이 들렸다.
새 정부가 내놓은 재난의료 대책이 이미 지난 정부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빗댄 것이다.
실제로 복지부가 이날 내놓은 재난거점병원 확대는 이미 복지부가 2년여 전인 2015년 3월에 언론에 공개했던 내용이다. 당시 복지부는 범정부 차원의 '안전혁신 마스터플랜' 수립에 발맞춰 재난거점병원(권역응급의료센터)을 20곳에서 그해 연말까지 최대 41곳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미 2년 전에 제시했다가 이루지 못한 박근혜 정부의 재난의료 정책이 새 정부에서도 되풀이된 것이다.
더욱이 새 정부의 재난의료정책에는 눈 씻고 봐도 국민과의 소통(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다. 대형 자연재해나 감염병 등의 의료재난 시에는 국민에게 위험상황을 신속히 알리고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기관, 언론을 연계하는 커뮤니케이션이 꼭 필요한데도 이 부분을 간과한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가장 최근의 재난이었던 메르스를 돌이켜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메르스가 유행할 당시 보건당국의 감시망을 벗어난 감염자가 속출하자 언론은 선정적인 보도 경쟁을 벌였다. 대표적인 게 메르스에 걸린 의사가 공공장소를 활보하고 다녀 수많은 2차 감염자 발생이 우려되고, 심지어는 이 의사의 사망이 임박해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하지만 이 의사에게서 비롯된 2차 감염자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해당 의사는 사망은 커녕 메르스를 잘 극복하고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다.
결국, 이런 오보에 국민 대다수는 과도한 공포심에 떨어야 했지만, 정작 오보를 낸 언론들은 사과 보도로 가름했을 뿐이다.
더욱이 보건당국은 메르스 초기만 해도 언론에 감염자가 생긴 병원을 공개하지 않았다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메르스 환자가 확산하자 뒤늦게 병원명을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이는 당국이 대규모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유기적으로 협조해야 하는 언론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미리 고민하지 못했던 탓이 크다.
이 때문에 메르스가 진정되고 난 후에는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조차 국가적 재난시 정부가 언론을 통한 유기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이번 새 정부의 재난의료정책을 보면 당시에 나왔던 이런 자성의 목소리는 공염불이었다는 의구심이 든다.
보건당국이 재난 상황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소중한 인명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올바른 정보가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난 정부에서 회자됐던 대책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국민 70% 이상의 지지를 받는 '문재인 정부'답게 국민을 위한 재난의료정책도 새판을 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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