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연습'·'사랑은 탄생하라'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시인 박성우(46)와 이원(49)이 새 시집을 냈다. 두 시집은 서정과 전위라는 한국 현대시의 큰 흐름을 각각 명징하게 보여준다.
박성우의 네 번째 시집 '웃는 연습'(창비)은 농촌 풍경과 일상적 대화의 정겨움을 에두르거나 비틀지 않고 독자 앞에 고스란히 가져다 놓는다. 찰진 입말은 그대로 시가 된다. "시인 동상, 눈 옹게 회관이로 밥 묵으러 와!"('어떤 대접') 한때 대학교수로 일하다가 고향 전라도에 내려간 시인에겐 '성님'들이 많다.
"핫따매 벨것도 아닌디 머덜라고 이런디야, 몇해 전 늦봄에 소로 쟁기질할 때 내가 식혜 캔 음료를 사다 준 게 고마워서 예초기로 풀을 쳐주었단다 글고 자네는 시인이잖여, 무단으로 등기이전을 해간 오뉴월 풀에게서 집을 찾아준 금수양반은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라며 손을 잡아끈다"('금수양반' 부분)
시인은 몇 달 비운 사이 집 주변에 웃자란 풀들을 말없이 쳐준 금수 양반과 막걸릿잔을 기울이다가 성님을 얻는다. 마음씨 푸근하기론 '동네 엄니'들을 따라가기 어렵다. 입원했던 노모를 모시고 오랜만에 돌아간 집에서 벌어진 풍경.
"동네 엄니들은 그간,/ 시골집 마당 텃밭에 콩을 심어 키워두었다/ 아무나 무단으로 대문 밀고 들어와/ 누구는 콩을 심고 가고 누구는 풀을 매고 갔다// (…)// 하이고 얼매나 욕봤디야,/ 누가 더 욕봤는지는 알 수 없으나/ 노모도 웃고 동네 엄니들도 웃는다/ 콩잎맹키로 흔들림서 깨꽃맹키로 피어난다"('고마운 무단침입' 부분)
시인의 어머니는 정읍에서 정읍으로 시집간 '김정자', 장모는 봉화에서 봉화로 시집간 '김정자'다. 나란히 누운 채 "근당게요"와 "그려이껴"를 주고받으며 긴 밤을 이어간다.('다정한 다정다감')
사라져 가는 농촌공동체의 다정다감함, 이리저리 잴 것 없는 '양반'들의 연대감은 "카드가 사준 정장을 입고"('카드 키드') 쳇바퀴 돌듯 생활하는 독자에게 따뜻한 위안을 준다. 132쪽. 8천원.
이원의 다섯 번째 시집 '사랑은 탄생하라'(문학과지성사)를 두고 시인이자 평론가인 박상수는 "자신의 방법론 안에서, 가장 충실한 방식으로 사회화된 애도를 수행한 기록"이라고 평했다. 자주 등장하는 아이의 목소리와 시선은 유연한 상상력을 돕다가, 시집의 뒤로 갈수록 슬픔과 고통을 정면으로 껴안는다.
"구름을 최후의 장소로 선택했다/ 지도를 완성시켰다/ 엄지에게 전권을 주었다/ 표지판을 세우고 길을 잃는 놀이를 멈추지 않았다/ 냉장고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고 싶어졌다/ 햄버거는 내부 구조를 바꾸지 않았다"('뜻밖의 지구' 부분)
서사 없는 사건들의 리듬감은 곧이어 아이들의 존재를 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불러낸다. "인사한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로./ 인사한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인사한다. 얼굴이 쏟아지도록./ 인사한다. 손을 뻗어 쓰다듬지 못하고./ 인사한다. 바람이 부드럽게 눈 감겨주기를./ 인사한다. 꼭 쥐고 있던 주먹은 내가 가져온다."('아이에게' 부분)
"배 둘레에 바싹" 붙은 아이들의 "등과 옆구리에서 물이" 솟구치자 "커다란 배가 흰빛에 타들어가기 시작했다".('사월四月 사월斜月 사월死月') 무참한 사건이 휩쓴 자리, 시인은 이상(1910∼1937)의 시구를 빌려와 심장을 보탠 사랑을 독자에게 청한다.
"사람은 절망하라// 사람은 탄생하라/ 사랑은 탄생하라// 우리의 심장을 풀어 다시/ 우리의 심장/ 모두 다른 박동이 모여/ 하나의 심장/ 모두의 숨으로 만드는/ 단 하나의 심장// 우리의 심장을 풀면/ 심장뿐인 새"('사람은 탄생하라' 부분) 172쪽.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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