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한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것은 녹록지 않아요. 그렇다고 화내면서 가만히 앉아서 지낼 수는 없죠.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면서 반 발짝이라도 움직여야죠."
데뷔 18년차 배우 문소리가 신인 감독으로 데뷔했다. 다음 달 14일 개봉하는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가 데뷔작이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까지 맡아 1인 3역을 해냈다.
문소리는 31일 열린 시사회에서 "감독이 돼야겠다는 목표나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면서 "18년 동안 영화 일을 하면서 영화가 더 좋아져 연출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문소리가 그동안 틈틈이 연출한 단편 3부작을 모아 장편으로 완성한 프로젝트다.
극 중 주인공 이름은 문소리다. 연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지만, 지금은 러브콜이 뚝 끊기고, 대학생 아들을 둔 정육점 주인역 등만 들어오는 여배우다. 이 배우가 겪는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들이 예사롭지 않다. 감독이 언젠가 직접 겪었던, 혹은 겪었을 법한 일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유쾌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산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아저씨 일행과 술자리를 갖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문소리의 팬임을 자처하는 아저씨들은 문소리의 외모를 두고 '자연미인' 운운하고, "예전에 어느 영화에서 병신('박하사탕')역으로 나왔죠"?"라고 물으며 문소리의 속을 긁는다. 대화하다가 느닷없이 "그러니까 민노당이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동안 사회 현안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감독은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이나 여배우로서 드러내기 쉽지 않은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등을 기꺼이 유머로 승화시켰다. 단단한 내공이 쌓이지 않았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문소리는 "이 작품 속 모든 에피소드는 모두 픽션이며,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면서 "다만 제가 살면서 유사한 감정을 느끼거나 비슷한 일들을 겪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실은 아니지만 100% 진심이 담긴 영화"라고 소개했다.
영화에서는 문소리가 여배우로서 외모와 매력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끊임없이 나온다.
"제가 2천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박하사탕'으로 데뷔했을 때 사람들이 제 얼굴을 보고 평범하며, 여배우를 할 만큼 얼굴이 예쁘지 않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때 여배우에게 예쁘다는 것은 뭘까 고민을 많이 했죠. 이창동 감독에게 제가 예쁘냐고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너는 충분히 예쁘다. 그런데 다른 여배우들이 지나치게 예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라고 하셨죠. 하하"
문소리는 "어렸을 때는 그런 말들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그런 시간을 다 넘어서 배우에게 중요한 것은 에너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레드카펫 위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여배우의 일상은 평범한 워킹맘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고,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병간호하고, 친정엄마의 임플란트 가격을 반값에 해준다는 말에 치과에 가서 홍보 사진을 찍어준다. 예술과 영화에 대한 고민도 늦추지 않는다. 오늘도 배우, 엄마, 며느리, 아내 등 일인다역을 해낸다. 제목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여배우 대신 워킹맘을 넣어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영화에는 성병숙, 윤상화, 전여빈 등 배우들과 함께 문소리의 실제 남편인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를 연출한 장준환 감독과 '신과 함께'를 만든 리얼라이즈 픽쳐스의 원동연 대표가 깜짝 출연했다.
문소리는 "남편을 겨우 설득해 출연시킬 수 있었다"면서 "얼굴이 나오지 않은 조건으로 출연했는데, 막상 촬영 당일날 현장에 가보니 분장을 하고 기다리고 있더라"라며 웃었다.
문소리는 앞으로 감독 행보에 대해 "과거 제가 영화감독과는 죽어도 결혼을 안 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감독과 결혼했다. 연출도 생각이 없고 연기만 하고 싶다고 했는데, 연출하게 됐다"면서 "그래서 인생에서 절대로 다시는 이런 말을 함부로 쉽게 하면 안 된다는 깨달음이 있다. 연기를 훨씬 더 많이 하게 되겠지만, 그냥 제 안에서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이야기가 있으면 연출을 할 수도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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