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리즘' 주제로 70팀 참여 …알뜨르비행장 등지서 열려
(제주=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섯알오름 4·3'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지나치자, 아득할 정도로 너른 평원이 펼쳐졌다. 고구마밭 사이에 몸을 낮추고 있던 봉분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봉분의 정체는 약 100년 전 건설된 비행기 격납고다. 일제는 제주 최남단 80만 평에 달하는 평지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1920년대 인근 주민의 노동력을 착취해 세워진 알뜨르비행장의 격납고 수십 곳에서 매일같이 일제 전투기들이 출격했다. 전쟁 말기 '가미카제'(神風)로 불리는 일본군 자살특공대의 조종 훈련이 벌어진 곳도 이곳이었다.
종전 후에도 군 소유가 되면서 온기라고는 없었던 이 땅을 살린 것은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은 땅을 빌려다 고구마와 마늘, 콩을 심었다. "예전에 건축가들과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농사 이런 것도 없었고, 정말 기운이 살벌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커 보이던 격납고도 오늘은 작아 보이네요." 1일 현장을 함께 찾은 김유선 작가의 이야기다.
생명의 기운이 뻗치고 있는 알뜨르비행장이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투어리즘'을 주제로 2일 개막하는 '2017 제주비엔날레' 무대가 되면서다.
연간 100만 명이 찾는 제주에서 요즘 가장 중요한 화두는 관광이다.
제주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미술전인 '2017 제주비엔날레'는 제주 사회와 지역민의 일상에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큰 영향을 미치는 관광을 15개국 출신 70팀의 현대미술 작가들과 함께 성찰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알뜨르비행장 자체가 어두운 역사를 생태적 가치로 극복하는 '대안'으로서의 관광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듬성듬성 놓인 10여 개 대형 설치작품은 동학농민운동과 일제강점, 4·3 사건 등 제주를 관통한 근·현대사를 작가들이 어떤 상상력으로 풀어냈는지를 보여준다.
김지연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은 "요즘 관광의 대안 중 하나가 역사의 아픔이 서린 곳을 찾는 다크투어"라면서 "전쟁의 상처가 남았던 알뜨르비행장이 농사로 인해 조금씩 바뀌고 치유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격납고 한 곳에 설치된 녹슨 철골의 전투기 형상은 강문석 작가가 만든 '기억'이다. 날개 한쪽이 부러진 채 땅에 박힌 일제 전투기는 하늘을 날 수 없다. 전투기에는 수십 개의 노란 리본이 무성하게 달렸다.
격납고 앞에 설치된 옥정호 작가의 '진지'는 적으로부터 자신을 은폐하는 보통의 진지와는 달리, 무지갯빛 모래 자루를 마음껏 드러냈다. 싸울 의지가 없음을, 평화의 몸짓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비행장 초입에 설치된 거대한 소녀상 '파랑새'는 동학 농민군이 사용했던 죽창에서 영감을 받아 대나무로 만들었다. 날카로운 날 대신 둥근 형태로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전한다.
전시는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 서귀포시 원도심, 제주시 원도심, 저지리예술인마을에서도 열린다.
제주현대미술관에서는 근현대사의 굴곡과 인간의 이기심 등으로 사라진 풍경이 여행의 새로운 테마로 주목받는 현실을 다룬 작품들을 선보인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관광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왜 관광을 할까' '지속가능한 관광이란 무엇일까' 로부터 시작된 다양한 의문들을 시각 예술 작가들과 함께 고민한 결과물들이 전시된다.
1일 오후 4시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원희룡 제주지사와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 비엔날레 홍보대사인 가수 보아 등이 참석했다.
비엔날레는 12월 3일까지. 문의 ☎ 1688-8170.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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