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구장서 뛰며 '촌놈이 출세했다'는 생각 들었다"
잠실구장서 은퇴 투어…프로 첫 경기와 마지막 한국시리즈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프로야구 선수에게 데뷔전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다.
은퇴를 앞둔 '국민타자' 이승엽(41·삼성 라이온즈)에게도 데뷔전의 가슴 떨리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이승엽의 다섯 번째 은퇴 투어가 열리는 3일 서울 잠실구장은 1995년 열아홉 살에 삼성 유니폼을 입은 그가 프로 데뷔전을 치른 곳이다.
이날 두산 베어스전을 앞두고 만난 이승엽은 "그날 하루에만 몸무게가 4㎏이 빠졌다"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승엽은 1995년 4월 15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9회 류중일 전 삼성 감독의 대타로 프로 데뷔 첫 타석에 나섰다.
상대는 LG의 특급 마무리 투수 김용수였으나 겁 없는 신인은 레전드 투수를 상대로 중전 안타를 때려 냈다.
이승엽은 "개막전 출전 명단에 들어간 걸 알고는 그날 경기 내내 안절부절못하고 더그아웃에 앉지도 못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시구를 한 날이었다. 대타로 한 번만 타석에 나섰는데도 경기 끝나고 몸무게를 재보니 4㎏이 빠졌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날 데뷔전에서 대타 안타 치고 다음 날부터 선발 라인업에 들어갔다"고 돌아봤다.
이승엽은 "넓은 잠실구장에서 뛰어보니 촌놈이 출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개막전이라 더욱 의미가 있었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잠실구장은 현재 두산과 LG가 함께 쓰고 있다. 이승엽에게는 홈인 대구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이 찾은 원정 구장이다.
이승엽은 "프로 초년병 시절만 해도 잠실구장은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컸다"며 "주말에는 관중들도 많이 찾았는데, 응원석에서 '3번 이승엽'이라고 응원해주면 짜릿했던 기억이 있다"고 소개했다.
국내에서 홈런이 나오기 가장 어려운 구장이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홈런이 많았다.
그는 "잠실 첫 홈런은 박철순 선배에게 쳤던 거로 기억한다"며 "연장전 가서 홈런을 친 경기도 몇 번 있었다. 언젠가 LG전에서 최향남 선배를 상대로 밀어서 홈런 2개를 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 스스로 '내가 많이 성장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았던 기억이 많다"고 했다.
이승엽의 기억은 정확했다. 삼성 구단이 기록을 확인한 결과 이승엽은 1995년 7월 23일 잠실 OB 베어스전에서 6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해 3회 두 번째 타석에서 상대 선발 박철순의 초구를 노려 우월 3점 홈런을 쳐냈다. 이승엽의 잠실구장 첫 홈런이었다.
물론 뼈아픈 기억도 있다. 2001년 두산을 넘지 못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그쳤을 때 눈물을 흘렸던 곳 역시 잠실구장이다.
이승엽은 "2001년 한국시리즈 때 여기서 두산에 졌다. 그리고 2015년에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마음이 아팠다. 두산이 워낙 야구를 잘한다"며 "하지만 실패를 해야 독기가 생긴다. 사람이 독기가 없으면 안 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계속된 은퇴 투어에 감사한 마음과 함께 미안한 마음도 전했다.
그는 "조용히 은퇴했으면 번거롭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며 "내 은퇴 투어 때문에 우리 선수단이 10∼20분 정도 일찍 출발해야 한다. 선수들에게는 그 시간이 정말 커서 미안하다"고 했다.
이승엽은 "그래도 좋은 선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공감도 되고, 그런 쪽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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