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지진 1년] ② [르포] "아직 안심 못해"…무너진 담, 금간 벽 곳곳 상흔

입력 2017-09-06 06:30   수정 2017-09-06 07:26

[경주지진 1년] ② [르포] "아직 안심 못해"…무너진 담, 금간 벽 곳곳 상흔

공포 사라졌지만 평온·불안 공존…지진 거론조차 꺼리는 분위기





(경주=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아이고 자꾸 찾아와서 물으면 뭐 하노. 그전에도 면사무소나 언론사가 와서 사진도 찍고 하더니만 달라진 게 하나 없고 지원비도 한 푼 안 주던데…"

지난 5일 오후 경북 경주시 내남면 부지2리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지진피해 복구 상황을 묻자 손을 휘저으며 이같이 대답했다.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는 지난해 9월 12일 발생한 5.8 지진 진앙이다. 5.8은 1978년 국내 지진 관측 이래 가장 큰 규모다.

강력한 지진에 이어 1년 동안 여진이 633회 이어져 경주시민은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 할머니 집 창고는 강진 때 지붕과 벽 일부가 무너졌다. 지금은 부서진 창고를 철거해 터는 텅 비었다.


같은 마을에 있는 김용조(73)씨 집 상황도 비슷했다.

사랑채 외부에 나온 천장은 곳곳에서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 누더기처럼 보였다.

사랑채 옥상 난간은 곳곳이 부서져 줄로 떨어지지 않게 매달아 놓았다.

김씨는 "경주시에서 두 번 왔다가 갔으나 수리나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저렇게 임시로 해놨다"며 "사는 처지에선 갑갑하다"고 말했다.

옆 마을인 부지1리는 겉보기엔 평온해 여느 농촌 마을과 비슷해 보였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면 새 콘크리트 블록으로 복구한 담이나 곳곳에 금이 간 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을회관 옆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쉬던 노인들은 지진 당시에 어떠했는지 묻자 "그때는 말도 못하게 무서웠다"라거나 "힘이 없으니까 서 있다가 굴렀다"며 기억을 떠올렸다.

이들은 "이제는 여진이 덜 해 지진 공포는 많이 사라졌다"면서도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춘이(84·여)씨는 "피해가 없는 집이 없었다"며 "집이야 형편없고 담에 금이 간 것은 수리도 못 해 나무로 받쳐놓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름 밝히길 꺼린 한 할머니는 "담이 다 무너졌는데 겨우 군인들이 와서 치워줬다"며 "면에서는 보상 대상이 아니라고 해서 지금껏 담 없이 산다"고 전했다.

일부 주민은 그나마 받은 복구비가 100만원 정도여서 실제 복구에 필요한 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최충봉(79)씨는 "집에 화장실 타일이 다 깨져서 100만원을 받았는데 1천만원을 줘도 못 고칠 상황이다"며 "곳곳에 시멘트로 때워놓았다"고 설명했다.




강진이 난 지 1년이 지난 경주 도심지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릉원 주변 황남동 한옥마을은 한옥 특성상 기와지붕이 많이 부서졌던 곳이다.

지진 직후에는 기와 수리할 사람이 부족해 파란 비닐로 겨우 비바람을 막았다. 지금은 집을 대부분 복구해 놓았다.

관광객은 황남동 식당이나 카페를 편안하게 드나들었다.

첨성대 주변이나 동궁과 월지에는 가을을 맞아 화창한 날씨와 정취를 즐기려는 관광객 발길이 이어졌다.

첨성대는 지난해 강진과 여진으로 윗부분에 있는 우물 정(井)자 형태 돌이 흔들리다가 움직였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첨성대에 긴급 안전조치를 끝냈다.

앞으로 주변에 잔디를 걷어내고 물이 잘 빠지도록 마사토를 깔고 지반 침하와 부재 위치 변화 등을 조사하기 위한 자동계측 시스템을 갖추기로 했다.

경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강진으로 경주에서 첨성대를 비롯해 문화재 57곳이 피해를 봤다.

이 가운데 45곳이 보수나 복구가 끝났다. 6곳은 공사 중이거나 공사할 예정이다.

경주시는 창림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867호) 등 6곳에는 눈으로 봤을 때 큰 문제가 없어 안전진단에 들어갈 예정이다.


상당수 경주시민은 이제 지진 얘기를 그만 꺼냈으면 하는 눈치였다.

한 주민은 "자꾸 지진 얘기해봐야 뭐 좋은 게 있느냐"며 "괜히 경주 관광객만 떨어지니 얘기를 안 꺼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주는 겉보기에는 차츰 안정을 찾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일부 시민은 강진 기억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

경주, 포항 등 주민은 올해 5월 '현관 앞 생존배낭'이란 책을 펴내 지진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지진 공포가 삶을 흔들어놓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경주시민 정모(68·여)씨는 "지금은 그래도 지진이 거의 발생하지 않으니 그나마 낫지만 처음에 강진에 이어 여진이 계속 날 때는 수시로 머리가 어지러웠다"며 "아직도 지진 뉴스만 봐도 혹시 이쪽에서 났는가 싶어서 겁이 난다"고 말했다.


sds12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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