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발목에 시간도 촉박…경북 2021년 목표치 70%→45% 낮춰
문화재 보강 매뉴얼 없고 민간시설 지원금 턱없이 부족…땜질 보수
[※ 편집자 주 = 2016년 9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규모 5.8 강진이 발생한 지 1년이 다 됐습니다. 강진으로 경주 등에서 23명이 다쳤고 재산피해가 5천368건에 110억원에 이르렀습니다. 이후에도 경주에는 여진이 633차례 일어났습니다. 평균 하루 1회 이상 난 셈입니다. 경주는 물론 한반도가 더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란 점이 확인됐습니다. 연합뉴스는 피해지 경주의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대응매뉴얼, 내진보강을 비롯한 지진 관련 대책이 어느 정도 추진되고 있는지 짚어보는 기사 4꼭지를 송고합니다.]
(경주=연합뉴스) 이승형 기자 = 2016년 9월 12일 오후 7시 44분께 경주에서 규모 5.1 지진이 발생했다.
이는 예고편 전진(前震)이었고 48분 뒤 덮친 더 큰 진동이 저녁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오후 8시 32분 규모 5.8 본진(本震)이 닥치자 경주뿐 아니라 전국이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1978년 기상청이 계기 지진을 관측한 이래 역대 최대 규모로 경주는 담이 무너지고 건물 벽이 갈라지는 등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일본 등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하던 강진을 생전 처음 겪은 시민은 평온한 저녁을 보내다가 한순간 날벼락에 집이나 건물에서 황급히 몸만 빠져나와 학교 운동장 등에서 두려움으로 밤을 지새웠다.
대구, 울산, 부산, 창원 등 인근 지역뿐 아니라 전국에서 진동을 느꼈다. 피해 상황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우리나라도 더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불안감이 확산했다.
강진으로 23명이 다치고 재산피해가 5천368건에 110억원에 이르자 정부는 같은 달 22일 지진피해로는 처음으로 경주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 여전한 지진 공포…초기 대응 문제점 개선
강력한 본진에 이어 1년 동안 여진이 633회나 이어져 경주시민은 좀처럼 지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여진 가운데 규모 3.0 이상도 모두 22차례(4.0 이상 1차례 포함)나 된다.
이처럼 엄청난 피해와 충격을 안겨준 강진에도 지진 상황 전파, 대피 등 초기 대응에 많은 허점을 드러냈고 당국에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즉각 안전대책 강화에 나섰다.
당시 많은 문제를 노출한 긴급재난문자 발송, 국민 행동요령, 대응 매뉴얼 등은 1년이 지난 지금 상당 부분 개선했다.
6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진방재대책으로 지진 조기경보·국민 안전교육 강화, 내진 대상 확대·보강, 지진연구·민관협력 확대, 지진 대응역량 강화에 중점을 뒀다.
경북도도 자체로 지진 대응 조직·연구인력 확충, 시설물 내진기능 보강, 경보·대피 시스템 개선, 매뉴얼 현실화, 교육훈련 강화 등 지진방재 5개년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행안부와 기상청으로 이원화했던 '긴급재난문자(CBS)' 발송 체계를 기상청으로 일원화했다.
지진대피소를 명확하게 하려고 옥외 대피소 8천155곳, 실내 구호소 2천489곳 위치를 지정해 네이버·다음 지도·티맵(T-map) 등에 수록해 주민이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건물, 다리 등 시설물 내진 보강은 많은 예산과 시간이 필요해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게다가 조직·인력 확충, 시스템 강화, 매뉴얼 구체화 등 상당 부분은 성과를 냈으나 내진 보강은 속도가 더디다.
◇ 내진 보강 더딘 걸음…예산 부족으로 난항
경북도는 애초 지진방재 5개년 계획에서 2016년 36.3%인 공공시설물 내진율을 2021년 70.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국비 지원 등 예산이 없어 목표를 45.2%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내진율은 시설물 가운데 규모 6.0∼6.5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비율을 말한다.
경주지진 이후 공공시설물 내진 보강을 위한 국비를 전혀 확보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올해 자체 예산 11억원을 투입해 3개 기관 건축물 31채를 대상으로 내진성능평가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 결과를 보고 보강 공사에 들어갈 방침이다.
경북 학교시설 내진율도 18.7%에 그친다. 올해 말까지 36.0%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보강을 하고 있다.
내진이 필요한 시설은 1천865곳이나 291곳에만 예산을 투입했다.
전국에 공공시설물 내진율은 43.7% 수준이다.
정부는 내진 설계가 안 됐거나 기준에 못 미치는 기존 공공시설물 10만5천448곳 가운데 877곳을 지난해 보강하기로 계획했다.
강진이 난 뒤 관심이 많이 증가해 예산 투입도 늘어 목표보다 많은 1천379곳 공사를 끝냈다.
행안부 관계자는 "내진 보강은 성능평가를 거쳐 사업 여부를 결정하는 만큼 평가와 공사에 1년 6개월 이상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경주지진으로 주택 등 피해가 컸던 만큼 민간건축물도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하는 문제도 시급하다.
전국 민간건축물 내진율은 2015년 말 기준 33.0%이고 경북은 34.3%다.
행안부는 내진 설계 의무대상 건축물을 3층 또는 연면적 500㎡ 이상에서 2층 또는 연면적 500㎡ 이상으로 늘렸고 올 12월까지 적용 대상을 모든 주택과 연면적 200㎡ 이상으로 확대했다.
민간소유 건축물 내진 보강을 권장하기 위해 내진 설계를 적용한 건축물 지방세 감면율 확대, 국세 세액공제 조항 신설 등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내년에 민간건축물에도 지진 안전도를 평가해 인증 마크를 부여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경북도도 민간건축물 내진 보강을 유도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하고 있다.
개인이 적은 돈으로 손쉽게 보완 공사를 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경북도는 지진과 관련한 체계적인 연구를 하는 국책기관인 국립지진방재연구원 설립도 추진하고 있으나 예산이 걸림돌이다.
경주지진 때 관련 정보 부족, 대응 전문기관 부재 등으로 어려움을 겪자 정부 차원에서 전담기관을 설립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활성단층 영향으로 지진빈도가 가장 높고 국내 원전 50%가 있는 경북 동해안에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위한 용역비를 행안부에 건의했으나 정부 예산안에서 전액 깎였다.
지진으로 경북 문화재 피해도 67건에 이르나 수리와 복구 매뉴얼이 미흡해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 56건에 복구나 수리를 완료했고 11건은 발주를 준비하거나 공사를 하고 있다.
경북도는 지진과 관련한 복구 사례가 적고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신속 복구에도 기준이 없어 국내외 보강사례를 공유하고 보강종류, 재료, 시공방법 등 표준 매뉴얼을 마련하도록 정부에 건의했다.
또 국가지정문화재를 신속하게 긴급 복구하기 위해 경미한 보수는 도와 시·군에서 직접 시행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화재를 빼고 피해가 난 공공시설물은 대부분 복구가 끝났다.
그러나 가정집 등 민간시설물은 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해 제대로 된 복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주택 파손에 재난지원금은 규정상 반파(半破) 이상으로 한정한다.
정부는 이 같은 기준을 완화해 주요 구조물 수리가 필요하나 반파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100만원을 지급했다.
주민이 추가 부담을 하지 않고서는 이 금액으로 복구에 한계가 있고 이마저도 받지 못한 주민도 많다.
이 때문에 전통 기와 대신 값이 싼 함석 기와를 올린 한옥이 곳곳에 눈에 띄고 담을 시멘트로 땜질 보수하거나 아예 손도 못 댄 주택도 적지 않다.
경북도 관계자는 "민간시설 복구 상황을 별도로 파악하지 않아 어느 정도 진행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며 "반파 이하 피해 주민에게 100만원을 지급했는데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경미한 피해를 본 주민은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고 말했다.
h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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