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4천999채 중 절반 넘게 한옥…"지원금 100만원으로 골기와 복구 못해"
역사관광지 미관 훼손 우려…경주시 "과태료 부과 현실적으로 어려워" 고심
(경주=연합뉴스) 최수호 기자 = "돈이 많이 들잖아요. 지진이 또 올 수도 있고…지붕 이야기라면 그만합시다."
5일 오후 경북 경주시 황남동 한옥마을. 첨성대, 대릉원 등 신라 유적과 오래된 기와집이 한데 어울려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첫인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마을 안으로 들어가 찬찬히 둘러보니 흙으로 구워 만든 재래식 골기와 대신 철판에 아연을 도금한 함석으로 만든 기와를 지붕에 쓴 한옥이 여러 채 보였다.
진흙 등으로 얼룩지거나 색이 바래 예스러운 느낌을 주는 기존 골기와 하고 비교해 함석 기와는 매끈하고 색깔도 선명해 마을 고유 풍경과 동떨어진 느낌을 줬다.
지난해 9월 12일 발생한 규모 5.8 강진으로 황남동 한옥마을도 경주 여느 곳처럼 피해를 고스란히 입었다.
땅이 거세게 흔들리면서 한옥 지붕과 담에 있던 기와가 순식간에 땅바닥에 쏟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진이 지나가자 비까지 내려 빗방울이 집안으로 떨어지는 2차 피해도 발생했다.
당시 전국에 있는 번와·와공 기능인들이 경주로 와 주요 문화재 지붕 등 복구에 힘을 보탰다. 시는 긴급 복구에 사용하라며 기부받은 골기와 6만3천장을 11개 읍·면·동에 나눠줬다.
그러나 일손 등이 부족해 미처 도움을 받지 못한 이곳 한옥마을 일반 가옥은 방수포로 응급조치한 뒤 비바람을 견뎌야 했다. 이마저도 제대로 고정이 안 돼 애를 먹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자 피해 주민은 상대적으로 공사 기간이 짧고 경제적 부담도 적은 함석 기와로 지붕을 복구했다.
골기와로 지붕을 복구하려면 파손한 기와를 모두 걷어내고 구조 진단·보강 공사를 한 뒤 새 기와를 올려야 하나 무게도 적게 나가는 함석 기와를 사용하면 보수 과정이 비교적 간단하다고 한다.
또 가격도 골기와보다 4분의 1 정도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피해 주민은 "지진으로 기와가 부서지고 비까지 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지진이 언제 또 올지 몰라 반영구적인 함석 기와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경주시는 정확한 규모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나 나머지 역사문화미관지구에 있는 한옥 사정도 비슷할 것으로 본다.
시 도시계획조례에 따라 역사문화미관지구에서 한옥을 신축하거나 고칠 때는 전통 양식을 따라야 하고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어기면 과태료 등 처분을 받는다.
이런 까닭에 이날 만난 주민 대부분은 기와지붕 복구에 언급하는 것을 꺼렸다.
지난해 경주에서 강진 피해를 본 주택은 4천999 채로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옥이다. 대부분 지붕 기와가 부서졌다.
시는 주택 파손 정도에 따라 주민에게 재난지원금을 100만∼900만원씩 차등 지원했다. 전파(900만원)나 반파(450만원)가 아닌 지붕 기와가 깨지는 등 피해를 본 대부분 주민은 100만원씩 받았다.
또 다른 피해 주민은 "재래식 기와로 지붕을 복구하려면 비용이 수천만원이 들고 공사 기간도 오래 걸린다"며 "지원금이 100만원에 그쳐 어쩔 수 없이 함석 기와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역사문화미관지구 안에 함석 기와를 쓴 한옥이 생겨나 미관을 해치자 경주 관광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경주시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이곳 한옥마을을 비롯해 각종 문화재와 보존가치가 큰 건축물 등이 산재한 사정동·인왕동 등 40곳을 '신라 역사문화미관지구(15.9㎢)'로 지정했다.
부산에서 온 관광객 이모(43)씨는 "아무래도 함석 기와 한옥은 전통미가 없는 것 같다"며 "지진 피해를 본 주민 처지는 이해하나 다른 곳에서 온 관광객은 옛 모습을 잃은 것 같아 아쉬워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피해 주민이 골기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재난지원금 외에 시 예산을 추가 지원하면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자체 재정도 넉넉지 않다"며 "전통미가 사라져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천재지변으로 피해를 본 주민이 함석 기와를 사용했다고 과태료를 물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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