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도로프가 고야 분석한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고야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괴테나 50년 후 등장한 도스토옙스키에게도 뒤지지 않는 심오한 사상가였다."
올해 2월 타계한 문예이론가 츠베탕 토도로프는 신간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아모르문디 펴냄)에서 스페인의 유명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를 사상가로 접근한다.
책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닳도록 봤던 초상화, 종교화, 정물화, 투우 그림 등은 밀쳐둔다. 고야가 왕실의 녹을 받는 궁정인이자 아카데미 일원으로서 그렸던 작품들이다.
대신 방대한 데생과 판화, 글을 중심으로 사상가로서의 행적을 좇는다.
1790년대 초 청력의 상실,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단두대 처형 소식, 알바 공작부인과의 실연 등 연이은 사건은 고야의 예술세계에도 변화를 몰고 왔다.
고야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대신, 그 너머의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는 근대 미술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였다.
특히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촉발된 유럽의 정치적 사건들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스페인을 점령한 나폴레옹 군이 계몽주의를 통치 수단으로 악용하자, 계몽주의 사상을 지지했던 진보주의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 자신도 계몽주의 영향을 받았고 계몽주의자들과 교류했던 고야는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판화집 '변덕들', '전쟁의 참화들' 등에 실린 수많은 판화와 데생은 고야가 인간 본성의 어두운 그늘, 폭력성과 광기를 꿰뚫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순박한 민중이 언제든지 살인자로 변할 수 있고, 순결한 가치의 이름으로 잔혹한 범죄가 저질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진실, 정의, 이성, 자유 같은 그의 가치는 여전히 익숙하다. 하지만 그는 이 길 위에 어떤 덫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동시대인들보다 잘 알았다."
류재화 옮김. 328쪽. 1만6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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