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北 대화의 장 끌어낼 '원유공급 중단' 등 고강도조치 주문
푸틴 "제재·압박으로는 북핵해결 불가"…협상국면으로 '방향전환' 촉구
文대통령, 푸틴 '북핵 로드맵' 공감 표시…"6자회담 복귀시키려면 先제재"
文대통령·푸틴, 남북러 3각협력 '의기투합'…정치 건너뛰고 경제협력부터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노효동 김승욱 기자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6일 오후(현지시간) 대좌한 한·러 정상이 동북아 안보의 최대 이슈인 북핵 문제를 놓고 내린 '처방전'은 확연히 달랐다.
두 정상 모두 '북핵 불용'이라는 기본 원칙에 공감하고 북핵 문제를 궁극적으로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데에는 인식을 같이했으나, 북한을 어떻게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것이냐를 놓고 뚜렷한 시각차를 드러낸 것이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튿날인 4일 밤 전화통화에서 감지됐던 입장차가 이번 정상회담을 거쳐 가일층 명료한 형태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문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함께 제시한 '북핵 해결 로드맵'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러시아의 외교적 노력을 평가했다.
로드맵은 중국의 '쌍중단'(북한의 핵실험·탄도미사일 발사와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 제안에 기초한 것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단계적으로 낮추고 북한의 핵포기와 함께 영구적 평화와 안보 구축을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프로세스를 의미한다.
과거 참여정부가 9·19 공동성명과 이에 터 잡은 6자회담을 통해 추진하던 단계적·포괄적 해법과 유사한 틀을 띠고 있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월 신(新) 베를린 구상을 통해 제시한 '평화노선'과도 일정하게 맥을 같이하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과거 참여정부 때 6자회담을 통해 북한에 핵 포기뿐만 아니라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등 북한의 체제를 보장해준다는 데에도 합의했었다"며 "푸틴 대통령이 제시한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제안과 같은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이 같은 협상 프로세스에 응하도록 하려면 결국 더 강한 '채찍'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분명히 했다.
특히 문 대통령으로서는 현 시점에서 대북 원유공급 중단과 같은 고강도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제재 조치로 압박을 가해야 북한이 대화의 장에 나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을 대화의 길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안보리 제재의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며 "이번에는 적어도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부득이한 만큼 러시아도 적극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이 같은 고강도 제재가 '효과'를 거뒀던 과거 사례도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최초의 6자회담에 응하지 않아 중국이 원유공급을 중단한 적도 있다"며 "그 이후 북한이 6자회담에 참여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제재와 압박으로는 북핵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으면서 아예 대화국면으로의 '방향전환'을 주문하고 있다.
물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기본입장을 재확인하기는 했으나, 북한을 몰아세워 봐야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고 '정치·외교적' 해법을 추구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게 푸틴 대통령의 인식이다.
푸틴 대통령은 "한반도 사태는 제재와 압력만으로는 안 된다"며 "감정에 휩싸여 북한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면 안 되고 냉정하게 긴장 고조 조치를 피해야 한다"며 관련국들의 차분하고 이성적인 대응을 강조했다.
이는 3일 중국 샤먼(廈門)에서 시진핑 주석과 만나 "대화와 협의만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효율적 방안"이라고 밝힌 것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그러면서 "우리도 북한의 핵 개발을 반대하고 규탄하고 있지만 원유중단이 북한의 병원 등 민간에 피해를 입힐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앞으로 유엔 안보리에서 검토되고 있는 대북 원유공급 중단 조치에 반대표를 행사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에는 현재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압박 흐름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강대국 차원의 논리도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시 주석의 입장과도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북핵 문제를 둘러싼 입장차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극동지역 개발을 중심으로 한 남·북·러 3자간 '메가 프로젝트' 구상에는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장은 북한 문제를 놓고 한·러 양국이 정치·외교적 입장을 달리하고 있지만 극동지역을 무대로 실질적 경제협력을 강화해나갈 경우 앞으로 한반도와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거대한 새로운 협력의 틀이 구축될 수 있다는 게 양국 정상의 인식으로 볼 수 있다. 일종의 '정·경 분리'의 접근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한국과 러시아 간에 협력을 우선적으로 강화할 경우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에 직면한 북한이 추후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바꿔말해 한·러 간의 협력은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의미도 크다는 얘기다.
홍장표 경제수석은 "당장 현 상태에서 3각 협력을 추진하는 게 아니고 그런 비전 하에서 러시아와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을 사전에 준비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대목은 문 대통령이 회담에서 자신이 추진하는 신(新) 북방정책이 푸틴의 신 동방정책과 내용상으로 상당한 유사성을 띠고 있다고 강조한 대목이다. 한반도와 극동, 동북아, 나아가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한국과 러시아가 공동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남·북·러 3자 프로젝트로 경제협력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서는 양자관계 전반에 걸쳐 실질적 협력을 강화하는데에도 양국 정상이 뜻을 모았다.
r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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