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법원 해묵은 '영장갈등' 재연되나…또다시 파열음

입력 2017-09-08 14:41   수정 2017-09-08 20:38

검찰-법원 해묵은 '영장갈등' 재연되나…또다시 파열음

첫 '블록버스터급 수사' 좌초 우려에 檢 반발…법원, 대응 검토

법원선 "제정신이냐" 격한 반응도…론스타 수사 땐 체포·구속영장 14번 기각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서울중앙지검(지검장 윤석열)이 8일 국정원 '외곽팀' 수사 등 주요 사건 구속영장 기각을 이유로 법원을 노골적으로 공개 비난하면서 양 기관의 해묵은 '영장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영장판사들의 판단에 "법과 원칙 외에 또 다른 요소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는 서울중앙지검의 가시 돋친 표현에 법원 내부에서는 "검찰이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얘기냐"라는 격한 반응이 나오는 상황이다.

법원과 검찰이 영장을 놓고 가장 격렬하게 대립했던 것은 2006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론스타 사건 수사 때다. 당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론스타 임원들에 대한 체포·구속영장은 12차례나 기각됐다. 외환은행 주가 조작 혐의로 체포된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경우 4번 연속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이에 당시 검찰 중견 간부가 "남의 장사에 거의 인분을 들이붓는 격"이라는 적나라한 표현을 써가며 비판했다. 유 대표 측과 관련된 고위 판사가 영향력을 발휘한 '전관예우'가 의심된다는 말도 공공연하게 돌았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당시 이끌던 중수부에는 윤석열 현 서울중앙지검장이 속해있었다.

검찰을 향해 법원 관계자는 "상사법 공부를 좀 더 하셔야겠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해외 투기자본의 비리 의혹을 겨냥한 수사의 당위성은 수긍이 가지만 전반적인 수사가 국제 규범이나 상법 이론으로 정교하게 무장한 게 아니라 명분을 앞세워 다소 거칠게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점을 지적한 표현으로 풀이됐다.

2007년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에 대한 구속영장이 연달아 기각됐을 때도 "사법정의가 실종됐다"(검찰), "형사소송법 원리를 망각했다"(법원)는 설전을 주고받았다. 2010년에는 서울 홍은동 여중생 시신을 훼손 사건의 19세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다섯 차례나 기각·각하되며 마찰을 빚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검찰은 '로또 영장'이라는 등으로 법원을 비판했고 법원은 검찰이 법리가 아닌 명분과 여론에 기대어 사법부를 압박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올해 상반기 진행된 '국정농단' 사건에서도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과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영장이 두 차례씩 기각되며 파열음이 나왔다. 최씨의 비서 역할을 했던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 역시 예상과 다른 영장 기각으로 불구속 기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검찰이 법원을 향한 이렇게 '송곳니'를 드러낸 것은 국정원 댓글 사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검찰에게 주어진 첫 '블록버스터'급 수사가 주요 영장의 기각으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으로 보인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경우 2013년 첫 수사 당시 윗선의 압력에 맞섰던 윤 지검장을 한직으로 좌천시켰던 원인이었던 만큼 수사팀의 의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적폐청산'을 기치로 삼은 현 정권이 주목하는 이번 사건에서 사이버외곽팀 팀장에 대한 첫 영장이 '꺾인' 것은 검찰에게는 상징적 의미로 여겨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법원은 검찰의 노골적 비난에 상당한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영장판사들의 공정성·중립성을 깎아내리는 듯한 검찰의 발언이 "레드 라인을 넘었다"며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은 조만간 공식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검찰이 법원의 영장심사 기준에 대한 문제 제기, 법원 영장재판에 불복할 수단이 없는 문제점 개선을 위한 '영장항고제' 도입 주장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bangh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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