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박물관서 개막 '한국 천주교회 230년 그리고 서울'에 현지 관심 집중
(바티칸시티=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자유와 평화를 위해 평신도들이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고, 퍼뜨린 한국 천주교회의 독특한 역사를 보여주는 이번 전시회가 전쟁 위기 속에서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바르바라 자타 바티칸박물관 관장)
한국 천주교 230여 년의 역사를 조명하는 특별 전시회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한국 천주교회 230년 그리고 서울'이 9일 바티칸 박물관에서 개막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주최, 서울시와 주교황청 한국대사관이 지원, 서울역사박물관이 공동 주관하는 이번 특별전은 한국 천주교회 230여 년 역사를 집대성한 천주교 유물 187점을 전 세계 가톨릭의 심장부인 바티칸에서 선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은 행사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바티칸 박물관에서 한국 관련 전시회가 열리는 것도 사상 처음이다.
개막을 하루 앞둔 8일 바티칸 박물관의 브라치오 디 카를로 마뇨 전시실에서 열린 언론 상대 프리뷰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으로 고조된 한반도의 위기 상황과 맞물린 때문인지 이탈리아 현지 언론과 외신 등 70여 곳의 취재진이 대거 몰렸다.
이곳 언론들은 공교롭게도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가 아닌, 평신도에 의해 복음이 싹트고, 전파된 한국 천주교 역사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리는 것에 대해 주목하며 질문을 쏟아냈다.
한국 천주교회는 1784년 청나라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유학자 이승훈이 서울 수표교 인근의 이벽의 집에서 정약전·약용 형제 등에게 세례를 주면서 처음 신앙공동체를 형성한 것으로 시작,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 없이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바르바라 자타 바티칸 박물관장은 취재진의 질문에 "이번 전시는 이미 2년여 전부터 계획된 것으로, 한반도가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작정하고 진행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전 세계가 걱정하는 가운데 열리는 이번 전시회가 평화에 대한 더 큰 울림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타 박물관장은 "특정 국가의 가톨릭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리는 것은 바티칸 박물관으로서도 처음"이라며 "한국의 초기 교인들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발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고, 박해 속에서도 꿋꿋이 신앙과 믿음을 지킨 것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초기 신자들이 신분제가 지배한 당시 체제에 위협을 가한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아 순교에 이르면서도 믿음을 지키는 과정을 꼼꼼히 담은 기록물들을 개인적으로 특히 눈길이 가는 전시물들로 꼽았다.
자타 관장은 이어 "한국의 역사, 신앙, 정서를 엿볼 수 있는 전시회에 부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특별한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접하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평소에 한국 천주교회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전시 기간 이곳을 찾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을 맡고 있는 허영엽 신부는 이날 모인 기자들에게 "한반도에 어느 때보다 대화와 화해가 필요한 시점에 한국 교회의 독특한 문화, 역사, 특별한 복음화 여정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리는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며 "평화의 상징인 바티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많은 분들이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기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1790년에 베이징 교구의 구베이 주교가 "단 한 명의 선교사도 들어가지 않은 조선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천주교가 전파되고 있으며, 평신도들이 사제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는 내용을 적어 교황청 포교성 장관에게 보낸 서한, 한복을 차려입고 단아하게 머리를 틀어 올린 한국적 성모의 모습을 그린 장우성 화백의 '한국의 성모자'(1949) 등 바티칸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천주교 관련 유물 10점도 함께 선보여진다.
한국에서 공수된 유물 가운데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체포를 계기로 일어난 병오박해(丙午·1846년) 등을 목격한 증언자들이 순교자 16인에 대해 증언한 내용이 담긴 '기해병오 치명 증언록'(1873년 이전), 6명의 순교자들의 무덤에서 발굴된 지석, 안중근 의사가 사형 집행 전 뤼순감옥에서 하늘에 대한 경외심을 붓글씨로 표현한 '경천'(敬天) 등이 포함됐다.
특별전 전시기획을 담당한 한국교회사연구소 송란희 과장은 "전시장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한쪽에는 조선 후기 자생적 교회의 탄생부터 박해와 순교,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분단, 민주화 운동 등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한국 역사와 함께 호흡한 한국 천주교 230년을 일별할 수 있는 유물들을 전시했고, 나머지 한쪽에는 한국천주교의 순교자들을 위무하는 공간으로 꾸몄다"고 설명했다.
순교자들을 위로하고 기리는 공간에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때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을 기념해 제작한 가로 9.6m, 세로 3m의 초대형 나전칠화 '일어나 비추어라'(2017, 김경자)가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 천주교회가 시작된 주어사 성지부터 광화문 광장까지 한국 천주교에 빼놓을 수 없는 장소들을 배경으로 한국과 바티칸을 대표하는 상징물을 두루 집어넣은 이 작품은 한국 천주교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며, 남북한을 남어 전 세계를 아우르는 화합을 기원했다.
당초 전시 품목에 포함됐다가 진위 논란이 인 '다산 정약용 무덤에서 발견된 십자가'는 전시되지 않았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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