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검사에도…드라마 속 '출생의 비밀'은 계속 유효

입력 2017-09-11 09:00   수정 2017-09-11 10:19

유전자 검사에도…드라마 속 '출생의 비밀'은 계속 유효

칫솔 바꿔치기, 거짓말 등 갖가지 장치로 이야기 만들어

"과다하게 활용…풀어가는 방식이 천편일률적인 게 더 큰 문제"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무덤이 DNA 검사를 위해 28년 만에 열린 사건은 현실에서 더이상 '출생의 비밀'이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친자 확인이 필요하면 죽은 자의 시신에서라도 DNA를 채취하면 되는 세상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드라마 속에서는 '출생의 비밀' 코드가 성황리에 가동 중이다. 세상이 열두번 변했음에도 '출생의 비밀'을 대체할 만큼 강력한 소재를 찾지 못한 작가들의 게으름 탓이기도 하고, 고령화된 TV 시청자들에게는 천륜을 배반한 이야기가 여전히 인기이기 때문이다.





◇ '칫솔 바꿔치기' 단골로 등장…유전자 검사 조작

"발가락이 닮았다"는 억지 위안을 해야 했던 시절에는 '출생의 비밀'이 쉽게 풀리지 않아 드라마 속 극성을 높이는 장치로 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됐음에도 안방극장에서는 여전히 '출생의 비밀' 타령이다. 특히 '본방 사수'를 하는 TV 시청층이 점차 고령화되면서 노년층이 주로 보는 주말극과 일일극에 단골로 등장한다.

그 과정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게 '칫솔 바꿔치기'다. 극 중 친자인지 의심되는 상황이면 단번에 유전자 검사를 시도하는데, 이 과정이 꼬여야만 이야기가 계속 굴러가기 때문에 반드시 악역을 맡은 인물이 훼방을 놓는다. 유전자 검사에 시료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게 칫솔과 머리카락인데 작가들은 주로 칫솔 바꿔치기 에피소드에서 긴장감을 한껏 불어넣는다.





MBC TV '불어라 미풍아'에서는 이를 위해 열쇠공까지 불러 빈집에 무단으로 침입해 칫솔을 바꿔치기했고, MBC TV '오자룡이 간다'에서는 주인의 눈을 따돌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칫솔을 몽땅 훔쳐 나오는 에피소드가 그려졌다.

현재 방송 중인 SBS TV 주말극 '언니는 살아있다'에서는 유전자 검사를 조작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바꿔치기하고, 이어 다시 머리카락을 바꿔치려다 걸리는 등의 에피소드가 등장해 '출생의 비밀' 코드의 생명연장을 하고 있다.



◇ 거짓말·트릭도 이어져…궁금증 유발 장치

유전자 검사는 최후로 미뤄두고 극을 끌어가는 방식도 있다. 눈앞에 친자를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유전자 검사를 해볼 생각조차 못 하는 식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MBC TV '왔다! 장보리'와 KBS 2TV '넝쿨째 굴러온 당신', SBS TV '미녀 공심이', KBS 2TV '내 딸 서영이', SBS TV '우리 갑순이' 등이 그런 기조로 드라마를 끌고 가다 막판에야 핏줄임을 확인하는 구성을 보였다.







친자식이 아님을 알고서도 주인공에게 다른 의도가 있어 '사실'을 뒤늦게 공표하는 경우도 있다. MBC TV '죽어야 사는 남자'나 '내 딸 금사월' 등이다. 그와 반대로 KBS 2TV '쌈, 마이웨이'는 친자식을 찾았음에도 이를 비밀로 하며 시청자를 끝까지 궁금하게 만들다 마지막에 이를 밝히는 전술을 썼다. 두 경우 모두 극 중 인물은 친자를 찾기 위해 애를 태우지 않고, 시청자의 궁금증만 키우는 작가의 트릭이다.

KBS 2TV '아버지가 이상해'와 그 바통을 이어 지난 2일 시작한 '황금빛 내 인생'은 거짓말에서 출발한다.

'아버지가 이상해'는 친아버지가 아님에도 어쩔 수 없이 친아버지 행세를 해야 하는 남자의 이야기였고, '황금빛 내 인생'은 엄마의 거짓말로 '흙수저'에서 하루아침에 재벌가의 잃어버린 딸로 신분이 바뀌어버린 여자의 이야기다.

형제끼리 몰라보는 경우도 있다. SBS TV '다시 만난 세계', MBC TV '도둑놈, 도둑님' 등은 형제지간임에도 서로, 혹은 한쪽이 알아보지 못해 긴장감을 유발했다.

'한국드라마연구소' 소장인 이응진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는 11일 "출생의 비밀, 신데렐라 스토리, 시한부 생명 같은 것은 전통적인 극의 장치임이 틀림없지만 한국 드라마에서는 너무나 과다해서 클리셰화 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한 이러한 장치를 풀어가는 방식이 천편일률적인 게 더 큰 문제"라며 "이름을 얻은 작가들은 이런 점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prett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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