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언론문건'으로 출구 찾아…보이콧 장기화시 여론악화 가능성 의식
'형식적 명분'·'빈손 회군' 지적도…정우택 "원내투쟁 더 강력히 할 것"
(서울=연합뉴스) 고상민 이슬기 기자 = 자유한국당이 9일 비상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지난 1주일간 이어온 정기국회 보이콧을 전격적으로 철회한 것은 애초 기대보다 냉담한 여론 앞에서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기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장외투쟁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투쟁력도 확보한 만큼 앞으로는 원내 싸움도 병행해 대여 투쟁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한국당 지도부의 자체적 판단이다.
특히 내주부터 시작되는 대정부질문(11∼14일)이 사실상 야당의 무대인 만큼 한국당은 이를 시작으로 문재인 정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파헤치고 이슈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한국당이 국회 복귀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언론장악 문건'에 대한 국정조사 추진이다.
민주당이 공영방송을 '언론 적폐'로 규정하고, KBS·MBC 경영진과 야당 측 이사 등의 퇴진을 시민단체를 통해 압박하자는 내용의 문건을 만들어 과방위원들끼리 공유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 한국당은 정부·여당을 향해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국회 보이콧에 나서게 된 이유와도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코엑스 옆 광장에서 열린 '국민보고대회'에서 "언론장악 문건은 언론자유를 침해한 중대범죄다. 만약 박근혜가 이랬다면 (과거 야당은) 당장 탄핵한다고 대들었을 것"이라며 "우리는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 핵심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민주당 문건'은 우리가 원내에 들어가는 명분이 됨과 동시에 원내외 병행투쟁의 동력도 잃지 않게 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보이콧 돌입 시 명분으로 내세웠던 '정부의 방송장악 저지' 구호에서 '출구'도 찾은 셈이다.
이런 대외적 명분과 별개로 일각에서는 보이콧 장기화 시 자칫 여론이 악화할 수 있다는 당내 우려도 국회 조기 복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부·여당이 꿈쩍도 않는 상황에서 무기한 장외투쟁을 이어가는 데 대해 당내에서도 회의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홍 대표의 강경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일반 의원들은 물론 지도부 내에서조차 최근 들어 부쩍 보이콧 복귀의 명분을 찾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언론장악 문건'은 장외투쟁의 동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에 터졌고, 한국당은 이를 기회로 잡은 것이다.
한국당은 오는 11일 오전 의원총회를 열고 국회 보이콧 철회 여부를 최종적으로 확정할 방침이지만 지도부의 결정이 그대로 관철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한 초선 의원은 "(내부적으로) 이번 이슈를 갖고 더 끌고 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지지부진하다는 주장이 많았다"며 "예전 사학법 투쟁을 할 때도 보면 장외투쟁은 시간이 갈수록 플러스알파의 요소가 있어야 했는데 그런 게 보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은 장외투쟁에서 문재인 정부의 언론장악 기도를 알려 소기의 성과를 냈고 대여 투쟁력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자평한다.
한 중진 의원은 자체 추산으로 국민보고대회 참석자가 10만 명에 달한다는 점을 거론, "오늘 집회에서 부쩍 자신감을 얻었다. 원내 투쟁을 병행해도 더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면서 "장외투쟁 장기화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는데 오늘 집회로 전기를 마련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빈손 회군'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날 비상 최고위 회의에서 '조기 복귀' 비판을 우려해 당분간 보이콧을 유지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당장 일각에서는 한국당이 주장하는 국정조사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현실적으로 관철될 수 있겠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반대가 불 보듯 뻔한 데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등 다른 야당의 협조도 장담할 수 없는 만큼 국정조사는 국회 복귀를 위한 형식적 명분 아니냐는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통화에서 "국정조사를 내걸고 원내 투쟁을 더 강렬히 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지금 당장 국정조사가 현실적으로 되냐, 안 되느냐를 따질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goriou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