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강도 조금 높였을뿐"…美언론, 실망 표출하면서 현실론도 제기
"러시아가 루프홀·밀수업자 활개, 中 대형은행 제재해야"
(유엔본부·워싱턴=연합뉴스) 이준서 강영두 특파원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11일(현지시간) 만장일치로 채택한 대북제재결의안 2375호는 여러 면에서 기존 결의안보다 진전된 내용을 담았다.
북한에 공급되는 석유 정제제품을 절반 수준으로 대폭 줄이고, 주력 수출품인 섬유·의류에는 금수(禁輸) 조치를 취했다. 김정은 정권의 또 다른 외화수입원인 해외송출 노동자 규모도 기한만료 시점에 맞춰 점진적으로 줄어들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대북 유류(油類) 공급분이 약 30% 감소하고, 자금줄도 10억 달러 안팎 차단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는다면 기대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제재 조항 곳곳에 틈새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제재결의안의 핵심 성과로 꼽히는 '유류 제재'는 불명확한 통계가 구조적인 루프홀(loophole)이다. 연간 400만 배럴로 추정되는 대북 원유 공급분을 동결하기로 했지만, 실제 공급량은 확인된 바 없다.
송유관을 통해 북한에 원유를 공급하는 중국은 이미 3년 전부터 공급량 공개를 중단했다.
유류 공급분이 목표치의 75%, 90%, 95% 등에 도달하면 공지하도록 했지만, 전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신고 내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켄트 보이드스턴 연구원은 CNN방송에서 "만약 중국이 데이터를 보고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원유공급을 제한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고용계약이 만료된 해외송출 노동자에 대해서도 신규 허가를 금지하면서도 '이미 서면으로 고용계약이 이뤄진 경우' 허용하는 예외조항을 뒀다.
전면 금지된 '대북 합작사업'도 인프라 사업의 예외를 인정했다. 중국-북한 간 인프라 사업이나 러시아 하산-북한 나진 프로젝트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보다 오히려 러시아가 구멍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의 빈자리를 러시아 밀수업자들이 빠른 속도로 메우고 있다"고 전했다.
밀거래는 기존에도 있었지만, 중국 국영 석유회사인 석유천연가스집단(CNPC)이 대북 연료수출 중단을 결정한 이후로 북한-러시아 교역 규모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한층 강화된 제재결의안을 내놓으면서도 곳곳에 예외조항을 인정한 것은 결국 중국과 러시아의 힘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미 언론에서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제재 강도를 조금 높이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이 중국·러시아와 타협하는 선에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는 옹호론도 나온다.
김정은 정권의 목줄을 완전히 틀어막는 초강경 제재를 고집했다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안보리 결의가 무산된다면 오히려 외교적 지렛대를 잃어버리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초안보다는 상당폭 후퇴했지만 국제사회가 대북 단일대오를 형성했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미국은 안보리 균열보다는 북핵 문제에 단합된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강력한 연대가 없었다면 채택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중국과 러시아에서 틈새가 벌어져 제재 효과 누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북한 대외무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을 통한 북한의 자금줄을 완전히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 싱크탱크 '민주주의방어재단'의 앤소니 루기에로 수석연구원은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자국 기업들이 미국으로부터 독자 제재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특히 중국의 대형은행에 대해서도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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