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재정 지원 운동…하원의 예산 삭감에 상원 부활 움직임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필리핀에서 '마약과의 유혈전쟁'을 벌이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눈엣가시' 같은 국가 인권기구의 예산이 대폭 삭감되자 반발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15일 일간 필리핀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필리핀 하원이 지난 12일 인권위원회의 내년도 예산을 1천 페소(2만2천 원)로 의결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를 비판하며 인권위에 자금 지원을 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여배우 아곳 이시드로는 트위터에 '#하원도둑놈들' 해시태그를 달고 인권위 예산 삭감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을 비난했다.
초법적인 마약용의자 처형을 다룬 영화 "어두운 밤'을 연출한 독립영화 감독 아돌프 알릭스는 "우리가 오늘 즐기는 모든 것은 자유와 인권이 있기 때문"이라며 "자발적으로 인권위 재정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SNS에서는 하원의원들에게 봉급을 1천 페소만 줘야 한다는 주장도 퍼지고 있다.
인권변호사단체 '아티클 3'의 힐다 클라베 대표는 인권위 예산 지원 중단을 주도한 판탈레온 알바레스 하원의장을 겨냥, "필리핀을 헌법이 단순한 휴짓조각으로 취급받는 폭정의 길로 끌고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독립적 기구에 수갑이 채워지고 품위있는 생존권이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희생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알바레스 하원의장은 "인권위원회가 범죄자들만 보호하고 있다"며 "범죄자 권리를 보호하기 원한다면 범죄자로부터 예산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치토 가스콘 위원장이 자초한 일"이라고 거들었다.
이는 경찰의 마약용의자 '즉결처형' 등 마약 유혈소탕전의 인권침해를 문제 삼는 인권위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야당 소속의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은 "헌법을 경시하고 민주주의 위협하는 것"이라며 정부 여당의 인권위 예산 삭감을 비판했다.
구엔테르 타우스 주필리핀 유럽상공회의소 회장은 "인권은 존중돼야 한다"며 "하원이 인권위 예산으로 1천 페소를 배정한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좋은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런 여론을 의식해 상원에서는 인권위 예산을 애초 정부가 편성한 6억7천800만 페소(150억 원)로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필리핀의 '복싱영웅' 매니 파키아오, 경찰청장 출신의 판필로 락손 등 여러 상원의원이 인권위 예산 부활을 약속했다.
그러나 알바레스 하원의장이 "상원이 원하는 대로 따를 수 없다"고 말해 인권위 예산을 놓고 상원과 하원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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