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의문사 놔두고 부마항쟁 진상규명 끝나선 안돼"

입력 2017-09-19 14:28   수정 2017-09-19 21:11

"아버지 의문사 놔두고 부마항쟁 진상규명 끝나선 안돼"

부마항쟁 유일한 사망자 아들 호소…다음달 5일 3년 조사기한 끝나

관련단체 "진상규명위 졸속·파행 운영…법 개정해 활동 연장해야"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부마항쟁 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이 연장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꼭 밝혀야 합니다."

유성국(56) 씨의 아버지 유치준(당시 51세) 씨는 부마 민주항쟁이 발생해 마산에서 시위가 격렬했던 1979년 10월 18일 밤 집을 나간 뒤 10여 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경찰이 성국 씨 집을 직접 찾아와 알려준 아버지의 죽음은 의문투성이였다.

경찰은 마산시 산호동 새한자동차 앞 도로에서 숨진 채 발견된 유 씨를 하루 만에 유족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부검하고 마산 서원골의 야산에 가매장한 상태였다.


가족들은 유 씨의 죽음이 부마항쟁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엄혹했던 전두환 군부 정권하에서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성국 씨는 32년이 흐른 2011년 지인의 소개로 찾아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부마항쟁 10주년(1989년)을 기념해 펴낸 자료집에 당시 지역신문 기자가 경찰에 취재한 '마산 경남대학교 소요사업 1차 보고서'에서 아버지의 사망을 처음 확인했다.

보고서에는 '새한자동차 영업소 앞에서 50세로 보이는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왼쪽 눈에 멍이 들고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린 채 죽어 있었음. 얼굴 둥근 편. 키 160㎝. 정황으로 판단, 타살체가 분명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망장소, 나이, 옷차림 등이 모두 유치준 씨와 일치했다.

유 씨는 부마항쟁 당시 확인된 유일한 사망자였다.

성국 씨는 아버지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2014년 출범한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회에 아버지를 부마항쟁 관련자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심의위원회 활동은 성국 씨를 절망케 했다.

박근혜 정부는 부마민주항쟁법이 통과된 이후 1년 넘게 위원회 구성을 차일피일 미뤘고 그나마 구성된 심의위원 10명 중 6명을 친박 인사나 뉴라이트 계열 학자로 채웠다.


성국 씨는 진상규명위원회가 제대로 된 진상조사는커녕 오히려 아버지의 죽음이 부마항쟁과 관련이 없다는 분위기로 몰아가자 지난해 5월 관련자 신청을 철회했다.

성국 씨는 "아버지 죽음이 부마항쟁과 전혀 상관없다고 결론 나는 것을 차마 지켜볼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신청을 철회했다"며 "차기 정부가 들어서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실낱같은 희망도 있었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위의 유일한 성과는 당시 창원지검이 작성한 유치준 씨 검시사건부를 찾은 것이었다.

타살이 분명하다는 경찰의 보고내용과 달리 검시사건부에는 유 씨의 사인이 뇌출혈사(지주막하출혈), '타살 혐의없음'이라고 명시됐다.

더군다나 경찰이 마음대로 부검하고 가매장까지 한 유 씨 시신이 하루 만에 '유족에게 인도'됐다고 적혀 있어 유족은 검시사건부 자체가 날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마항쟁 관련 단체는 유치준 씨의 사망 조사과정은 진상규명위원회가 부마항쟁 관련자를 가려내고 항쟁의 진실에 접근하려는 의지가 사실상 없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지난 3년간 폐쇄적이었고 파행의 연속이었던 진상규명위의 활동은 관련자 신청자 수·인용 수만 보더라도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때 부산·마산에서 연행된 시민 1천600여 명 중 부마항쟁보상법의 까다로운 조항과 진상규명위의 소극적인 활동으로 인해 10% 가량인 194명만 관련자 신청을 해 166명이 인용되고 28명이 기각됐다.

이는 직접적인 관련자 외에 목격자, 희생자 가족 등 항쟁 주변인만 7천여 명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진 제주 4·3항쟁 진상규명 과정과는 대조적이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약한 부마항쟁 진상규명과 관련자 보상은 영남 민심을 달래려는 의도였을 뿐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부를 결코 드러내지 못할 한계가 명확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지난 19대 국회에서 관련자 보상금을 현실화하는 내용을 포함해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30일 이상으로 된 구금 일수를 낮추고 항쟁으로 인해 해고된 회사원의 근속연수를 1년 이상에서 3개월로 줄이는 등의 내용은 들어가지 못했다.

부마민주항쟁법에 따라 진상규명위원회는 다음 달 5일 3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6개월 이내에 진상조사 보고서를 써야 하지만 이대로 끝내서는 안 된다고 부마항쟁 관련 단체는 입을 모았다.


김종세 부산민주공원 관장은 "관련자 규정이나 항쟁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이 나오면 조사가 가능하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활동이 계속돼야 한다"며 "항쟁 관련자를 폭넓게 인정하는 것은 물론 그동안 비공개된 국정원·국방부 관련 자료를 받고 심의위원을 재선임해 항쟁의 가려진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고 말했다.

win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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