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결국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소설 '거울의 책'

입력 2017-09-20 08:40   수정 2017-09-2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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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결국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소설 '거울의 책'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1987년 미국 프린스턴대. 작가를 꿈꾸는 모범생 리처드는 심리학과 대학원생 로라와 같은 숙소에 머물게 되면서 금세 사랑에 빠진다.

로라에겐 지도교수이자 인생의 멘토인 심리학계의 석학 와이더 교수가 있었다. 로라와 사귀면서 와이더 교수를 알게 된 리처드는 서재 정리 작업을 돕기로 하고 그의 집에 드나든다.

리처드의 눈에 로라와 와이더는 사제지간 치고는 지나치게 가까워 보였다. 리처드의 의심은 당연히 질투로 발전한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와이더는 살해된 채 발견된다. 자신의 집에서 리처드와 저녁식사를 한 뒤였다. 로라는 인사도 없이 사라졌고, 리처드는 용의자로 지목된다.

루마니아 출신 작가 E. O. 키로비치의 소설 '거울의 책'(민음사)은 세 남녀의 미묘한 관계와 와이더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다. 그러나 치정 얽힌 살인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 쫓는데만 집중하지는 않는다. 27년 뒤,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또다른 세 사람이 화자로 등장해 미제사건으로 남은 과거를 복원하려 애쓴다.

첫 번째 화자인 출판 에이전트 피터는 리처드가 기억을 되살려 쓴 자전적 소설을 건네받는다. 원고는 리처드가 눈 속을 헤치며 와이더의 집으로 향하는 대목에서 끝난다. 그러나 리처드의 기억은 뒤이어 등장하는 두 명의 화자, 전집 잡지 기자인 존과 사건 당시 담당 형사였던 로이의 추적에 의해 산산이 부서진다.

로라의 기억이 맞다면 리처드는 로라에게 일방적으로 집착하는 일종의 스토커였다. 그렇다면 리처드와 로라의 관계, 로라와 와이더의 관계는 그저 리처드의 왜곡된 기억일 뿐일까. 와이더의 집에서 벌어진 살인사건도 리처드의 망상에서 비롯된 것일까.

와이더 교수는 기억의 편집, 상실과 복원을 연구하는 데 몰두했다. 살인사건은 그의 연구주제와 뗄 수 없는 관계였음이 나중에 밝혀진다. 소설의 제목처럼 인간 각자가 관찰하고 기억하는 세계는 결국 주관적이고 무의식적인 선택의 결과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들 모두가 상황을 잘못 알고 있었다. 그리고 창 너머로 진실을 파악하려 했지만 자신들의 집착밖에 확인하지 못했다. 그들의 창은 사실 언제나 거울이었기 때문이다." 이윤진 옮김. 484쪽. 1만5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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