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집안에 잡동사니 잔뜩…70대 노모, 탈진한 채 발견돼
평택 서정동사무소 구원의 손길…이틀간 8t 분량 수거
(평택=연합뉴스) 권준우 기자 = "현관문을 여니 고물과 각종 쓰레기가 천장까지 쌓여 벽이 돼 있었어요. 뚫고 들어가는 데만 30분이 걸렸습니다"
지난 18일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의 한 빌라 앞에 모인 서정동사무소 직원들과 자원봉사자 등 20여 명은 이 빌라 2층 A(58)씨의 집 안을 빼곡하게 채운 고물과 쓰레기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13평 남짓한 A씨의 집 안에는 하수도 배관과 자전거 바퀴, 건축자재와 폐비닐 등 온갖 잡동사니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먹다 남은 음료수병 등 생활 쓰레기와 썩은 음식물도 군데군데 처박혀 있어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앞서 A씨의 노모(79)는 이달 초 이런 잡동사니 더미 속에서 탈진한 채 발견돼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집 청소에 나선 자원봉사자들은 오로지 마스크에 의지한 채 고물과 쓰레기를 집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이들이 6시간 만에 거실에서 수거한 고물의 무게는 5t이 넘는다. 그마저 며칠 전 200여만원을 받고 팔아넘긴 일부를 제외한 양이다.
수거한 고물은 대형 마대자루에 450kg씩 담아 1t 트럭에 실어 10여 차례에 걸쳐 수거장으로 날랐다.
청소 이틀째인 19일에는 방 3곳에 들어찼던 고물 3t을 끄집어내는 작업이 이어져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됐다.
A씨의 집은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냈지만, 상황은 여전히 심각했다.
오랜 시간 쓰레기와 맞닿아 있던 벽지는 누렇게 변색한 데다 곰팡이가 군데군데 슬었고, 장판은 고물 무게에 눌려 쭈글쭈글하게 변형됐다.
동사무소는 21일에는 집 내부 방역 작업을, 23일에는 도배와 장판 시공을 진행할 예정이다.
A씨가 집 안을 쓰레기장으로 만들게 된 출발점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A씨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2차례 뇌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술 후 기억력 장애 등 후유증을 앓던 A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고물을 주워다 팔며 생활을 이어갔다.
2015년부터는 '저장강박증'이 악화해 본격적으로 집 안에 물건을 들이기 시작했고, 더는 공간이 없자 집 앞에 쌓아두기도 해 빌라 주민들의 민원대상이 됐다.
A씨의 노모는 아들이 고물을 줍기 위해 밖으로 나도는 동안 탈진 상태에서 구조됐다.
지난 1일 "새벽에 노인이 우는 소리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조대가 집 안 잡동사니 사이에 쓰러져 있는 노모를 발견한 것이다.
장기간 방치돼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노모는 곧바로 인근 요양병원으로 옮겨져 회복 중이다.
동사무소 관계자는 "노모와 단둘이 사는 A씨는 집에서 잠자는 것 외 식사 등은 하지 않아 고물을 제외하곤 세간살이가 거의 없었다"라며 "따로 사는 동생들이 있지만, 왕래는 거의 없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7월 민원접수 당시엔 고물도 A씨의 재산으로 볼 수 있어 치우지 못했지만, 노모를 구조하는 과정에 A씨 동의를 얻어 정리작업을 하게 됐다"라며 "앞으로 A씨 모자가 위생적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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