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이름으로·무한으로 가는 순간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 딸에 대하여 =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한 작가 김혜진(34)의 장편소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화자는 노인요양병원에서 일하며 무연고 노인을 돌본다. 딸과 그의 동성 연인과 한 집에 산다. 딸은 동성애 문제로 대학에서 해고된 동료들을 위해 거리에 나서고 함께 시위하는 사람들마저 집을 드나든다.
성소수자·무연고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메커니즘과 우리 내면의 이중 잣대를 드러낸다. 소설가 강영숙은 추천사에서 "퀴어가 어떻고 페미니즘이 어떻고 담론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사이 이 소설은 담론을 가로지른다"고 말했다.
민음사. 216쪽. 1만3천원.
▲ 국화 밑에서 = 1953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언론인 출신 작가 최일남(85)의 열네 번째 소설집.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쓰고 발표한 단편 7편을 묶었다.
표제작 '국화 밑에서'는 하루 두 군데 장례식장을 방문하게 된 화자가 상주와 주고받는 이야기다. 장례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풍속을 평하고 유년의 기억을 더듬는다.
'밤에 줍는 이야기꽃'의 화자는 새벽녘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나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를 시청하며 노년을 보낸다. 동년배들의 "연민과 인멸의 냄새" 가득한 말과 행동에 자기모멸과 비애를 감추지 않는다.
노년의 시선에 비친 세상의 희로애락을 '칙살스럽다', '헤실바실하다', '호도깝스럽다' 같이 멋스럽고 고색창연한 우리말로 표현한다. 문학평론가 권성우는 "'국화 밑에서'에 이르러 이 시대의 한국 소설은 노년의 실존과 내면에 대한 또 하나의 인상적인 경지와 단단한 묘사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문학과지성사. 272쪽. 1만3천원.
▲ 괴테의 이름으로 = 시인이자 수필가인 최종고(70)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시집. 평생 흠모해왔다는 독일 문호 괴테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쓴 시 76편을 모았다.
"철학, 문학, 신학은/ 하나여야 한다고// 적절하신 말씀// 소인배들이/ 밥벌이로 친 그물을 헐자// 괴테 선생의 이름으로/ 하이데거도 그리 말했지." ('하나' 전문)
기파랑. 168쪽. 1만2천원.
▲ 무한으로 가는 순간들 = 영화평론가이자 시인인 안숭범(38)의 두 번째 시집.
스크린에 소품들을 배치하듯 흐릿해진 기억들을 배열한다.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분할하거나 과도한 수사를 입히는 대신 '롱테이크'로 펼쳐 놓는다. 이병철 시인은 안숭범을 일컬어 "기억의 고고학자"라고 했다.
"새에게 유일한 나뭇가지가 있듯이, 어느 고래에게도 최초의 풍랑이 존재하듯이, 나에겐 북한 영화처럼 네가 걸어오던 날이 있다, 동숭동엔 후진하는 언어를 따라 되감길 새벽들이 마지막 무대를 준비 중, 하루에 한 이름씩 잊을 수 있다면, 착한 개를 위로하던 풍경이 위로받고 있는 거기 무대에서, 지금 무한으로 가는 이 마음으론 모두가 입장해도 좋은데" ('동숭동, 혹은 무한으로 가는 순간들' 전문)
문학수첩. 144쪽.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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