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청소년에 도움주고 싶었는데 기회 삘리 와 얼떨떨"
전소미와 CF 출연…그를 소재로 한 연극·소설도 준비 중
(원주=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제가 얼마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문화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렇게까지 빨리 기회가 올 줄은 몰랐죠. 너무 놀라 얼떨떨했지만 제겐 영광스럽기도 하고 꼭 하고 싶던 일이어서 단번에 홍보대사 제의를 수락했죠. 제가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
최근 SNS 등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모델계의 샛별 한현민(16)이 여성가족부의 '다문화 인식개선 홍보대사'가 됐다. 21일 강원도 원주시 한솔오크밸리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11회 전국다문화가족네트워크대회 개회식에 참석해 정현백 여가부 장관으로부터 위촉장을 받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흑인계 혼혈 모델로 꼽히는 한현민은 지난해 3월 한상혁 디자이너의 '2016 F/W 시즌 에이치에스에치(heich es heich) 쇼' 오프닝 무대에 데뷔한 이래 가장 '핫'(Hot)한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불과 1년여 만에 수십 차례 패션쇼 무대에 섰으며 영국에서도 화보 촬영을 하고 왔다.
189㎝ 65㎏의 늘씬한 몸매에다가 까무잡잡한 피부와 뚜렷한 얼굴 윤곽을 보면 한국계라는 느낌조차 들지 않지만 입맛은 순댓국밥과 간장게장을 좋아하는 천상 한국인이다.
한현민은 무역업을 하던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5남매 맏이로 한국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개성이 있다거나 이국적이라는 말을 듣지만 어릴 때는 얼굴이 검다고 놀림을 많이 받아 상처가 깊었다고 한다.
"지나가기만 해도 여기저기서 신기한 듯 저를 쳐다보는 시선이 싫었어요. 유치원에 들어간 뒤로도 친구와 친해질 만하면 그 친구가 '어머니가 너와 놀지 말래'라고 제게 말하며 멀어지는 일이 거듭됐죠."
집안도 넉넉지 않아 꿈도 접어야 했다. 아버지는 영어강사를 하다가 신부전증을 앓아 일을 그만뒀다. 어머니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한현민은 현재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살고 있는데 강서구 화곡동 한광고 1학년에 재학 중이다.
"운동을 좋아해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돈이 많이 드는 종목이어서 포기했죠. 부모님께서 저희 5남매를 키우며 가정을 꾸려가기가 힘드시거든요. 옷에는 원래 관심이 많았고 중학교 들어가기 직전에 키가 훌쩍 크다 보니 막연하게 모델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중학교 선배가 모델 기획사에 들어간 것을 보고 따라 하게 됐죠."
그러나 처음에는 생각대로 일이 이뤄지지 않았다. 모델 세계에서도 흑백의 인종차별이 심했고 피팅 모델로 일하며 시급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평소 들려준 말이 버팀목이 됐다. "넌 특별한 존재란다. 꼭 좋은 일이 있을 거야,"
한번은 프로필 사진 촬영비만 내면 해외 오디션을 보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사기를 당했다. 돈만 날리고 남은 건 사진 몇 장뿐이었는데 그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지금의 소속사인 SF엔터테인먼트의 윤범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윤 대표는 그를 만나 이태원 길 한가운데서 걸어보라고 하더니 곧바로 계약하자고 했다.
윤 대표에 따르면 패션모델 말고도 각계에서 한현민에게 '러브 콜'이 쏟아진다고 한다. 이미 단편영화 몇 편을 찍었고 CF도 촬영했으며 그를 모티브로 한 연극도 제작될 예정이다. 아시아출판사는 그를 인터뷰해 소설로도 내놓을 계획이다. 아버지가 캐나다인이고 어머니가 한국인인 걸그룹 'IOI'의 전소미와 함께 교복 광고 모델로도 등장한다.
"갑자기 너무 바빠져 친구들과 컴퓨터게임이나 축구를 하며 놀 시간이 없어져 아쉬워요. 워킹 연습하랴 몸매 가꾸랴 시간이 정말 모자라요.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힘들고요. 그래도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니까 뿌듯합니다. 빨리 돈을 벌어서 부모님께 집을 사드리고 싶어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을 꼽았다. 미국의 대부분 흑인은 차별과 냉대를 숙명처럼 받아들였지만 그는 현실에 머물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싸우고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란다.
지금도 차별에 상처받고 좌절하는 다문화가족 친구나 동생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고 싶은지 묻자 어머니가 자신에게 들려준 말을 똑같이 해주고 싶다 말했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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