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체리 피킹'(과실 따 먹기)은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해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유럽연합(EU) 정상들에 결국 양보했다.
메이 총리는 2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한 브렉시트 연설에서 "영국은 2019년 3월 EU를 떠난다. 우리는 더는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 회원국이 아닐 것"이라며 "우리 EU 친구들에게 EU 단일시장의 4가지 원칙들은 분할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메이는 EU를 공식 탈퇴하는 2019년 3월 이후 2년간 이행 기간을 둔 다음에 브렉시트 협상에서 타결될 새로운 영-EU 무역관계 협정을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이행 기간 상대 시장에 대한 접근은 현 조건들을 계속 따르고", "이행 기간의 체제는 기존 EU 규정들과 기존 EU 법규 체계가 될 것이다" "이행 기간 EU 시민들은 영국에 와서 거주하고 일하는 것을 계속할 수 있다. 다만 새 이민 체계 준비에 꼭 필요한 이민 등록이 있을 것이다", "영국의 EU 탈퇴로 EU 파트너들이 현EU예산계획(2014~2020년) 동안 더 많이 내야 하는 것 아닌가 또는 더 적게 받는 것 아닌가를 걱정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가 회원 시절 했던 약속을 지킬 것이다"등의 발언을 내놨다.
이행 기간에는 EU 단일시장과 지금처럼 교역하는 대가로 EU 예산분담, EU 시민 이동의 자유, EU 법규 유지 등 EU 측의 요구조건들을 모두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영국의 주요한 브렉시트 협상 입장들에 드리워진 불투명성을 걷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교착 상태에 빠진 브렉시트 협상에 돌파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메르켈 총리는 EU 단일시장에 대한 최대한 접근을 얻으면서 동시에 EU 시민의 이민을 억제하기 위해 EU 단일시장의 근간이 되는 사람 이동의 자유는 거부하는 '체리 피킹'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거듭 공언해왔다.
메이가 3차례에 걸친 브렉시트 협상에서 EU 측의 굳건한 태도를 확인한 뒤에야 "실용적인" 해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받아들인 셈이다.
이날 영-EU 브렉시트 협상의 EU 집행위원회 수석대표인 미셀 바르니에는 성명을 통해 "건설적" 정신이라고 평가하고 "영국 정부가 처음으로 현 조건들 아래 EU 단일시장 접근에 따른 혜택을 계속 누리겠다고 제안했다"며 환영했다.
물론 메이가 백기 투항한 것은 아니다.
영국 내 EU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최종적 사법 주체는 영국 법원이 돼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메이는 "영국 내 EU 시민의 권리와 관련한 EU 법에 불확실성이 있을 경우 영국 법원이 일관된 해석의 관점을 갖고 EU 최고 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 판결을 고려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EU 측은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궁극적 주체는 ECJ가 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또 이른바 이혼합의금으로 200억유로를 시사한 대목도 600억~1천억유로로 전해지는 EU측 요구에는 크게 못 미친다.
메이의 이 같은 협상 태도 변화는 조기총선 참패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이는 브렉시트 협상을 앞두고 "강력한 협상권"을 달라며 조기총선을 요청하는 카드를 던졌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여당이 의석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과반 의석마저 상실하는 '참패'를 당했다. 거센 책임론에 사퇴 위기에 내몰렸다가 가까스로모면했지만 여전히 2022년 차기 총선을 이끌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게 영국 언론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이제 메이는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를 선택했던 유권자들, 특히 EU와 신속하고 완전한 결별을 바라는 유권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험난한 과제와 상대해야 한다.
jungw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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