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출신으로 좌우 아우르는 정치력…예상 깨고 난민 수용
동성혼도 사실상 받아들인 포용력…'조용한 외교'에서 글로벌 지도자로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 동독 출신의 첫 통일독일 총리, 전후 최연소 독일 총리에 이어 4선 연임의 길에 들어섰다.
자신의 정치적 스승으로 서독의 6대 총리에서 통일 이후까지 16년간 총리직을 수행한 헬무트 콜 전 총리와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됐다.
메르켈의 12년간의 집권 기간 독일은 유럽 최대 경제대국으로 자리를 굳건히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를 무난히 넘겼다.
정치적으로도 유럽의 중심 국가로 탈바꿈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당당히 맞서게 됐다.
보수 정당을 대표했지만 대연정을 통해 진보정책도 상당히 받아들였다. 우파가 집권 주류인 독일은 유럽 내에서 좌파적 색채가 상당했다.
이런 과정은 요란하지 않았다. 안정감과 냉철함을 갖춘 메르켈의 '조용한 카리스마' 때문이다.
◇ 폴란드 피 흐르는 동독출신의 물리학 박사…서구 지향 = 메르켈의 출생지는 1954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목사인 아버지 호르스트 카스너가 메르켈의 유년 시절에 동독 브란덴부르크주의 조용한 시골 마을인 템플린으로 이주하면서 동독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온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폴란드 출신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폴란드에선 그의 팬클럽이 결성됐다.
메르켈은 어려서부터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끈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수영 시간에 3m 높이의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면서도 45분간 서 있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러시아 실력이 독보적이었다. 15세 때 러시아어 올림픽에서 우승했다. 라이프치히 대학에 탁월한 성적으로 합격해 물리학을 전공했다.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는 이런 메르켈을 눈여겨보고 요원으로 영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메르켈은 좁은 동독의 세계에 답답함을 느끼며 서방세계를 지향했다.
이는 그가 68혁명에 온정을 두지 않았던 이유로 작용했다. 그가 지향하는 서방세계에서 체제에 저항하는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엘리트였기 때문에 소련과 체코 등지를 다닐 수 있었다. 그는 교환학생으로 소련에 갔다가 동행한 울리히 메르켈과 2년간의 동거를 거쳐 첫 번째 결혼을 했다. 물리학 박사로 동베를린 물리화학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정치 입문…콜 그늘 벗으며 1인자로 =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11월 9일. 당시 친구들과 사우나에서 있었던 메르켈은 이후 삶이 바뀌었다.
정치에 입문해 동독의 야당이던 민주약진(DA)에 가입해 얼마 안가 대변인으로 발탁됐다. 이어 집권 기독민주당 내각의 부대변인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정치무대에서 활약했다.
헬무트 콜 전 총리에게 발탁된 메르켈은 여성청소년부 장관, 환경부 장관을 잇따라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1998년 총선에선 기민당이 패배한 뒤 당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을 맡았다. 같은 해 동거 중이던 요아임 자우어와 재혼했다.
결국, 2005년 총선에서 3기 집권을 노리던 노련한 승부사 게르하르트 슈뢰더를 물리치고 총리직에 올랐다.
메르켈의 최대 무기 중 하나로 '침묵'이 꼽힌다. 침묵에 대해 "침묵할 줄 아는 능력은 구동독 시 얻은 아주 큰 장점이다. 생존전략 중 하나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냉정·냉철함도 그를 설명하는 주요 이미지다. 남성 중심의 독일 정치판에서 1인자에 오르기까지 한 힘이기도 하다.
콜의 양녀로까지 불렸던 메르켈은 1998년 말 콜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기민당은 콜 없이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후 콜은 정계에서 퇴장했고, 메르켈은 기민당 대표에 오른 뒤 2005년부터 총리직을 거머쥐었다.
◇ 소박함·겸손함, 장기 집권의 무기 = 메르켈은 개인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카메라에 낯설어하고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어색해한다. 이번 총선에서 최대 경쟁자인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 후보와 단 한 차례 가진 TV토론에선 승리했다는 평가를 얻었지만, 지금까지 TV 토론의 성적표는 좋지 못했다.
그의 안정적인 성격은 휴가지에서도 나온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7월 말 남편과 이탈리아 북부 산악 휴양지 쥐트티롤 줄덴에서 휴가를 보냈다.
9년째 같은 장소다. 머문 호텔도 같다. 올해 휴가지에서 5년째 붉은색 체크 남방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은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메르켈은 펑소 낮은 굽의 신발에 비슷한 스타일의 단정한 정장을 입는다.
정치 입문 후 동독에서 온 여성 정치인. 더구나 외모도 꾸미지 않고 핸드백도 들지 않는 그에게 조롱과 냉소가 쏟아졌었다.
정치 이력이 붙이면서 이전보다 다소 꾸미기도 했지만, 여전히 소박하다. 가식이 없고 겸손한 태도는 메르켈의 무기가 됐다.
히틀러와 나치 시대에 대한 경계심이 큰 독일 사회에서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한 요인 중 하나라는 평가다.
◇ 진보정책 수용…외교 영향력 갈수록 증대
메르켈은 재임 기간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리스 경제난 등 유로존 위기에 맞닥뜨렸다. 역시 침착함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해 신뢰감을 얻었다. 이는 3선 연임의 동력이 됐다.
이후 독일 경제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유로존 역시 회복세로 돌아섰다.
그의 업적 중 하나는 3차례의 총리 임기 중 두 차례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거치면서 진보정책을 대폭 수용한 점이다.
2011년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자 탈핵 선언을 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집권 다수가 보수세력인 상황에서 상상하기 어려웠던 결단이었다.
2015년 가을에는 국경으로 물밑 듯이 밀려드는 난민 문제를 마주했다. 난민 문제를 냉정하게 다루던 메르켈은 예상을 깨고 난민을 수용하는 결단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난민 유입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이번 총선에서 최종 득표 결과 기민·기사 연합은 지난 총선보다 10% 포인트 가까이 낮은 득표율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에는 동성혼 결혼에 대해서도 연방의회에서 기민당의 자유투표를 결정했다. 자신은 개인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보수진영으로부터의 비판을 다소 누그러뜨렸지만, 자유투표 결정은 사실상 동성혼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여졌다.
메르켈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까지 미국과 순탄한 관계를 맺어왔다.
메르켈은 개인적으로 미국에 대해 호감을 가진 것으로 평가됐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도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오바마는 지난해 독일을 방문해 "내가 할 수만 있다면 메르켈을 찍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던 메르켈이 국가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과는 각을 세우고 있다. '스트롱맨'과 메르켈은 체질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국제 정치무대에서 메르켈의 존재감은 더욱 부각됐다.
메르켈은 북핵 문제 해결에도 중재자를 자청했다. 집권 4기, 국내적으로 더욱 탄탄해진 입지를 바탕으로 외교무대에서 더욱 영향력을 넓힐 것으로 보인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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