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단 신작 '?빠이, 이상' 리뷰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지난 21일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개막한 서울예술단의 '?빠이, 이상'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1910~1937·본명 김해경)의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삶과 문학 그 자체를 무대화했다.
관객들은 시와 연극과 노래와 춤, 빛들이 엉킨 낯설고 모호한 공연 한 가운데 놓이게 되는데, 이 혼란스러움이 이상 작품의 본질과 맞닿으면서 오히려 쾌감을 안긴다.
소설가 김연수의 장편 소설 '?빠이, 이상'(2001)을 무대로 옮긴 공연이다. 이상의 유품인 '데드 마스크'(고인의 얼굴에 유토나 점토를 발라 뜬 석고모형)를 중심으로 이상의 삶과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공연은 이상의 글쓰기 방식만큼이나 미스터리하고 파격적으로 진행된다.
관객들은 티켓과 함께 받은 가면을 쓴 채 이상의 장례식장(공연장 내부)으로 이동한다.
그림과 기하학적 도형, 인쇄 기호, 알쏭달쏭한 숫자, 띄어쓰기가 거부된 문장으로 가득한 그의 글들로 가득한 통로를 통과하는 의식을 치르고 나면 관객들의 눈앞에는 이상의 관이 나타난다. 관객은 수동적인 '관람자'가 아닌 이상의 장례식에 참석한 '참여자'가 된다.
극 중 등장하는 세 명의 이상(육체(身)·감각(感)·지성(知)으로서의 이상)과 이상의 시 '오감도'에 등장하는 '13인의 아해'들은 끊임없이 "이상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물음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수십 줄의 붉은 레이저 빛과 독특한 건축물을 연상케 하는 안무, 대사와 노래와 시가 뒤엉킨 이야기들, 공연장 사방에 퍼져 바느질하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는 배우들이 공연 시간 90분을 채운다. 흡사 공연이 아닌 3D(3차원) 추상화를 보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관객들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진 공연장 어디에나, 어떤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앉아 극에 참여하게 된다. 자신들이 앉은 위치에 따라 보고 싶은 대로 공연을 감상하면 된다.
관객들은 공연 시간 90분이 지나도 이상이 결국 죽기 직전 "레몬 향기를 맡고 싶어 했는지, 멜론을 먹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없다.
"차가움이자 뜨거움이오, 암호이자 빨간 병균이며, 로맨티스트이자 아방가르드였던, 청년 정신이면서 광인"이기도 했던 이상의 모습 중 무엇이 진짜 얼굴이었는지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극은 이상처럼 수많은 얼굴로 사는 유쾌함에 대해, 서로를 하나의 얼굴로 규정짓지 않는 해방감을 이야기한다.
각색과 작사를 맡는 오세혁은 프로그램 노트와 간담회 등을 통해 "이상은 수많은 얼굴로, 비밀과 모호함으로 시대를 가로질러간 사람이었다"며 "정말 '이상'스럽게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작자인 김연수도 "원작의 의도를 잘 표현해줘 충격을 받았다"며 "독자들이 이상을 소문과 추문들로만 소비했는데, 이번 공연은 이상의 작품들을 예술적으로 보여줄 기회가 된 것 같다"고 평했다.
서울예술단은 이번 작품에 대한 관심 속에서 12회 공연이 일찌감치 매진됨에 따라 오는 27일과 29일 추가 공연을 편성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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