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문학상] 의외로 자유롭던 1960년대 '딴따라' 이야기

입력 2017-09-26 08:41   수정 2017-09-26 08:56

[수림문학상] 의외로 자유롭던 1960년대 '딴따라' 이야기

제5회 수상자 이진 "알고 있는 과거와 다른 시대상 조명하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한 편의 뮤지컬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악극 같은 느낌으로요.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와 다른 시대상을 당대의 관점으로 조명하고 싶었습니다."

제5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인 이진(35)의 '기타 부기 셔플'은 1960년대 초반 용산 미8군 연예인으로 활약하는 김현의 이야기다. 2012년 블루픽션상을 받으며 작가로 등단한 청소년 장편소설 '원더랜드 대모험'과 마찬가지로 성장소설의 얼개를 하고 있다.

전쟁고아로 힘겨운 청소년기를 보낸 스무 살의 주인공은 우연한 기회에 용산 미8군 기지 라이브클럽에서 잡일을 시작한다. 공연을 펑크 낸 기타리스트를 대신해 얼결에 무대에 섰다가 정식으로 4인조 밴드 '와일드 캐츠'의 멤버가 된다.

김현은 라이브클럽에서 일을 시작할 때부터 최고의 여성 싱어로 꼽힌 '키키 킴'에게 반한다. '와일드 캐츠'는 나중에 미국 라스베이거스 연예계로 진출하게 되는 키키 킴의 백 밴드였다. 김현은 와일드 캐츠의 팬을 자처하는 미군 병사 제리와 국적을 초월해 교류하기도 한다.

정식으로 밴드 멤버가 된 김현 앞에 미군 기지 연예계의 요지경이 펼쳐진다. 밴드들은 무대에 서기 위해 미군 장교들로 이뤄진 심사위원단 앞에서 오디션을 치러야 했다. AA부터 낙제점인 D까지 매겨진 평가에 연예인으로서 명운이 걸렸다. 밴드 멤버들은 죽을 힘을 다해 오디션을 준비한다.

작가는 후대에 재구성되고 희석된 역사가 아닌, 당대의 시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애썼다고 했다. 연예흥행사의 쇼 단장 '미스터 홍'과 와일드 캐츠의 인기 기타리스트 이준엽은 모두 마약중독자다. 와일드 캐츠가 몰락의 길을 간 계기도 이준엽의 마약중독이었다. 1960년대 서울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의 머릿속 서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1960년대 서울에 마약중독자 재활원이 굉장히 많이 있었어요. 초등학생, 중학생도 수용됐고요. 서울 안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해요. 당시 서울이 요즘 미국드라마에 나오는 멕시코나 콜롬비아 같은 나라의 모습이었다는 게 슬프지만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교과서에서 배우거나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과거와 달라요. 스토리텔러로서 매력을 느꼈죠."

심사위원단은 '기타 부기 셔플'을 수상작으로 선정하고 나서 작가가 35세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했다. 소설에는 1960년대 서울 시내와 미군기지 내 모습을 비롯한 시대상이 정밀하게 그려졌다. 인물들은 신중현과 윤복희 등 당대 유명 음악인의 활약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당시 일간지 기사와 '서울 600년사' 같은 사료, 신중현과 윤복희의 회고록, '명랑'이나 '가요생활' 등 당시 발행된 가십 잡지를 많이 참고했다"며 "그때 잡지나 신문을 보면 이미 안면윤곽을 해준다는 성형외과 광고가 실렸다. 연예인에 대한 기사도 지금보다 더 자극적이었다"고 말했다. 미군기지 내부 풍경은 당시 주한미군으로 복무한 미국인 노병의 인터넷 블로그에서 도움을 받았다.

작중 김현이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는 1962∼1963년은 "마지막 자유를 누리던 시대"였다고 작가는 말했다. 박정희가 군복을 벗고 제5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게 1963년 12월이다.

"한 시대가 끝나고 전혀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사이의 과도기라고 할까요. 박정희 정권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마약류에 대한 경각심이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박정희가 장기집권하면서 마약류 단속이 엄격해지고 마약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도 못하는 사회가 됐죠. 제 아버지는 4·19 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사회가 너무 자유롭고 다들 제멋대로여서 오히려 보수적인 질서를 반기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해요."







'기타 부기 셔플'에는 한국 현대사의 갖은 사건과 1960년대 올드팝 명곡들이 곳곳에 출몰하며 시대의 흔적을 새긴다. 김현의 삶을 더듬으면 고난을 딛고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성장소설이다. "성장소설은 모두가 공감하기에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인물의 변화를 담아내는 게 소설 쓰기의 가장 큰 쾌감이죠. 그래서 성장이라는 테마를 좋아해요."

작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PC통신에 소설을 올리며 습작해왔지만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뚜렷한 목표는 없었다. 대학에서 디자인과 영상이론을 공부했고 졸업 이후에는 온라인게임 개발업체에서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등단이라는 걸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처음 쓴 청소년 소설 '원더랜드 대모험'이 상을 받았다. 이번 '기타 부기 셔플'도 성인소설로는 처음 쓴 작품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과거를 다루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시대와 공간을 먼저 생각하고 인물을 집어넣는 식으로 구상해요. 메시지가 뚜렷한 쪽이라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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