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化 계기 가족과 갈등, 90대에 홀몸 신세" 터키언론 보도
딸 "가족에 재앙 부른 영화, 오스카 가선 안 돼" 인터뷰서 호소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6·25 전쟁 중 한국 고아소녀를 돌본 터키 참전용사의 실화를 다룬 영화 '아일라' 개봉을 앞두고 그 주인공 노병의 안타까운 소식이 터키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26일 일간지 사바흐 등 터키언론과 한인회에 따르면 6·25 참전용사 쉴레이만 딜비를리이 하사는 영화 제작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작년부터 가족과 심한 불화를 겪고 홀로 살고 있다.
영화 '아일라'는 얼마전 오스카 외국어영화상부문 후보로 선정, 터키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졌다.
딜비를리이씨의 딸 세바하트(60)씨는 사바흐와 인터뷰에서 "영화 제작사가 아버지를 속이"고, 가족으로부터 단절시켰다고 주장했다.
올해 94세인 딜비를리이씨 부부는 2015년 여름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자녀들의 집을 오가며 말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해 8월 '딜비를리이 하사의 사연을 영화로 제작하겠다'며 영화사 디지탈사나틀라르(이하 디지탈)가 접촉해 왔다. 회사 대표는 처음에 자신을 '대통령 측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소개했다고 세바하트씨는 설명했다.
영화사에 앞서 주(駐)터키 한국대사관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이유로 아버지를 찾아왔기에 이번에도 비슷한 일로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영화사 관계자들과 만남이 잦아질수록 딜비를리이씨는 자녀들에게 불신을 나타냈다. 가족보다는 영화사에 더 귀를 기울였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대통령실에 영화사 대표의 신원을 직접 확인한 세바하트씨는 "여기 그런 사람은 없다. 사기를 조심하라"는 답변을 들었다.
영화에 반감을 품게 된 세바하트씨는 부모를 모셔오려다 오히려 고소를 당했으며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명령까지 받았다.
그후 세바하트씨는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고서야 홀로 입원한 어머니만을 만날 수 있었다. 병원 측이 환자를 보살필 보호자를 찾다 딸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된 것이다.
터키 한인회의 한 관계자는 "현재 딜비를리이 하사가 자녀들과 만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내와도 이혼하고 홀로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한인회는 '터키군 아빠'가 한국 소녀 '아일라'(한국명, 김은자)를 찾고 상봉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주선하고 지원했다.
김씨(72)는 올해초 두번째 터키를 방문해 딜비를리이씨를 만난 자리에 가족이 없는 것에 크게 상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첫 상봉에서는 '터키 아빠'의 가족을 함께 만났다.
세바하트씨는 인터뷰에서 "영화사 대표가 우리 가족에 재앙을 가져왔다"면서 "이런 영화가 오스카에 가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이 커지자 영화사 대표는 터키 일간지 밀리예트와 인터뷰에서 "가족이 3년간 아무 말이 없다가 영화가 오스카 후보에 선정된 후 500만터키리라(약 16억원)를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세바하트씨가 돈을 목적으로 악의적인 인터뷰를 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러나 딸의 인터뷰 이전에도 딜비를리이 가족이 영화사를 비난하며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의 내용이 한인 사회에까지 알려졌다.
영화사는 터키 한인들에게도 약속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거나 한인 아동의 오디션 음원을 상업적으로 무단 활용해 말썽을 빚었다. 한인 사회의 지속적인 개입·압박에 개봉을 앞두고 최근에야 일부에게 보상하고 합의했다.
한인회 관계자는 "영화사가 프로젝트를 꼭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로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며 "한국의 자유를 위해 희생한 참전용사의 가정이 화평해지기를 바라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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