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중일 서체 특별전' 개막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필묵(筆墨)은 곧 성정이니, 모두 그 사람의 성품에서부터 비롯된다."
중국 청대의 문인인 유희재(劉熙載, 1813∼1881)는 글씨에 사람의 성격이 담긴다고 했다. 개인마다 글씨체가 다를진대 국가별 서체가 같을 리 없다. 한자와 붓글씨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한국, 중국, 일본도 서로 다른 서체를 발전시켜왔다.
동아시아 3국의 서체를 비교하는 전시인 '한중일 서체 특별전'이 국립한글박물관에서 28일 개막했다.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이 공동 개최하는 이 전시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571주년 한글날을 맞아 기획됐다.
유호선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이날 언론공개회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글자의 의미보다는 글자 자체에 집중했다"며 "한자나 일본 글자인 가나의 뜻을 몰라도 비례와 균형 등 여러 미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시장은 한글, 한자, 가나를 소재로 만든 대형 미디어 작품을 가운데에 두고 세 나라의 서체를 감상할 수 있는 유물이 배치됐다.
중국 글씨의 기원은 거북 껍질이나 동물 뼈에 새긴 갑골문(甲骨文)이다. 전시에는 숙명여대 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중국 은허박물관 갑골문의 복제품이 출품됐다. 3천여 년 전에 새겨진 글자를 보고 있으면 기록을 향한 인류의 집념이 새삼 느껴진다.
한자 서체의 변화 과정을 알 수 있는 서예 작품들도 나왔다. 고졸한 조형성이 특징인 전서(篆書)에서 출발한 한자는 전서보다 쓰기 쉬운 예서(隷書)를 거쳐 정자체인 해서(楷書)와 흘림체인 초서(草書)로 나아갔다.
일본은 한자를 수용한 뒤 가나라는 독창적인 문자를 만들었다. 유 연구관은 "가나 서예는 아름답고 세련미가 있는 연결선과 고풍스럽고 맑은 먹색이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가나 서예의 특징은 1600년을 전후해 제작된 노래집인 '만요슈'(萬葉集)에 잘 드러나 있다. 필사본이지만 글자의 크기가 동일하고 굵기 변화가 없어 단정하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이 1919년 일본어로 쓴 일기도 선의 굵기와 자간이 일정하다.
우리나라의 서체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목판에 새긴 것처럼 좌우가 대칭을 이뤘던 한글 서체는 섬세하고 단아한 궁체로 발전했다.
초창기 한글 서체는 16세기에 간행된 '월인석보'(月印釋譜), 흘려 쓴 궁체의 정수는 정조의 비인 효의왕후 김씨가 필사한 '곤전어필'(坤殿御筆)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 연구관은 "이번 전시는 서체사의 관점에서 삼국을 비교하는 시도"라며 "한글 서체사의 흐름을 정리하고 한글 서체의 활용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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