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유대 관계이자 잠재적 안보 불안요소
쿠르드족 '가혹한 탄압' 터키와 차별화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독립 국가를 수립하려는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의 최근 움직임에 국제사회가 모두 반대하지만 그 가운데 인접국인 이란과 터키는 직접 이해 당사자인 만큼 '말로만 우려'에 그치지 않고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란과 터키의 대응 방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수위가 다르다는 점이 감지된다.
터키의 대응이 이란보다 더 강력하고 직접적이라고 볼 수 있다.
쿠르드족에 대한 터키 정부의 판단이 상대적으로 간단해서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시도를 군사적으로 탄압한다.
특히 반정부 무장정파 쿠르드노동당(PKK)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고 무력 대응을 서슴지 않는다.
이들에게 KRG의 분리·독립운동은 안보와 정권 유지를 위해 초장부터 제압해야 할 불안요소다.
터키는 KRG의 독립 투표 이튿날인 26일 이라크 정부와 함께 국경지대에서 중화기와 포대를 동원해 공동군사훈련을 벌였다.
KRG의 경제가 터키에 크게 의존하는 점을 '인질'로 삼아 경제 제재도 가하기 직전이다.
이란도 KRG의 분리·독립에는 반대한다는 대원칙엔 동의하지만, 25일 KRG와 가까운 국경지대에서 군사훈련을 했을 뿐 현재까지 구두 경고에 그친다.
KRG 아르빌로 오가는 항공편을 중단한다면서도 '이라크 정부의 요청'이라는 해명을 붙였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27일 "KRG의 독립투표는 매우 심각한 전략적 실수지만 쿠르드족을 우리의 친구로 여긴다"며 "이란은 영원한 쿠르드족의 친구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쿠르드족에 가혹한 터키와 달리 이란은 포용 정책을 펴왔다.
이는 이란과 이라크 쿠르드족의 전통적 유대관계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라크 쿠르드족은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 사담 후세인 정권의 반대편에서 이란을 도왔다. 이 때문에 1987년 후세인 정권의 잔인한 화학무기 보복 공격(안팔 작전)을 당하는 종족적인 비극을 당했다.
이란에선 쿠르드족은 '전시엔 용감하고 평시엔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후하게 평가된다.
이란의 이슬람혁명(1979년) 이전 팔레비 왕정 때도 양측의 관계는 돈독한 편이었다.
당시 친미·친서방 팔레비 왕정은 친소련 이라크 정권을 견제하려고 이라크 쿠르드족을 지원했다.
2014년 발발한 이슬람국가(IS) 사태에서도 이란은 KRG에 군사 지원을 했다.
KRG가 이란과 맞닿은 이라크 동북부 국경지대를 수비해 IS의 유입을 막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쿠르드족의 기원이 이란 고원이고 이들이 기원전 8세기께 세운 메디아(구약성경의 메데) 왕국이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왕조)과 융합됐다는 고대의 인연도 양측의 유대를 설명하는 근거로 자주 쓰인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프랑스가 시리아, 이라크, 터키 국경을 인위적으로 가르면서 국경지대에 살던 쿠르드족도 나뉜 것과 달리 이란 내 쿠르드족은 고대부터 자연스럽게 섞여 이질감이 덜하다.
이란어와 쿠르드어의 유사성, 조로아스터교 전통 등 닮은 구석을 꽤 찾아볼 수 있다.
쿠르드계가 모여 사는 이란 서북부 국경지대엔 이미 코르데스탄(쿠르디스탄) 주가 공식 명칭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2013년 첫 대선에서 깜짝 당선됐을 때 코르데스탄 주는 그에게 70%가 넘는 몰표를 던졌다.
이런 유대 관계의 이면엔 쿠르드족을 향해 이란이 경계와 의심이 거두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란 내 쿠르드족은 대부분 수니파 무슬림이어서 IS, 알카에다 등 극단 수니파 테러조직이 이란으로 침투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쿠르드족은 1946년 쿠르드족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이란 서북부에 마하바드 공화국을 수립하기도 했다.
소련의 '배신'으로 비록 11개월로 단명했지만 이란과 쿠르드족의 관계를 크게 흠집이 났다.
마하바드 공화국 수립의 주역이자 전설적 독립투사 무스타파 바르자니의 아들이 현재 분리·독립운동의 최고 인사인 마수드 바르자니 KRG 수반이다.
이란으로선 1991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전에서 적성국 미국 편에선 KRG가 이란의 코앞에서 독립국가를 수립하는 점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KRG가 독립 국가를 실제로 세운다면 코르데스탄 주의 쿠르드족이 동요해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서북부 국경에서 영토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커진다. 피는 대체로 물보다 진한 탓이다.
이란은 KRG의 분리·독립을 반대하면서도 자국내 쿠르드족의 민심 이반을 우려해 물밑으로 KRG와 직접 중재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복합적인 배경에서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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