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애플 위스콘신대 교수-조희연 서울교육감 대담
"소수 학교서 엘리트 배출되면 민주주의 실현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자율형사립고 같은 형태의 엘리트를 위한 학교는 한국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이 맞다."
세계적 교육학자로 '실천교육학' 석학으로 꼽히는 마이클 애플(75)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는 29일 서울시교육청에서 한 조희연 교육감과 대담에서 이같이 말했다.
애플 교수는 1989년 한국을 방문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지지 발언을 했다가 안기부에 의해 감시·억류당한 적이 있을 정도로 한국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2년 전 방한 때도 조 교육감과 만났으며 당시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 관심을 끌었다.
이번 대담에서 조 교육감은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자사고 등을 폐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애플 교수의 의견을 물었다.
애플 교수는 "미국은 대통령과 대법관 등이 소수 사립학교에서 배출된다. 이런 사회 엘리트들이 소수 학교에서만 교육받는다면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이 어렵다"며 자사고 같은 형태의 엘리트 학교는 없어지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그는 교육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다양한 자료·통계로 보여주는 것이 교육 당국의 역할이라고도 강조했다.
애플 교수는 조 교육감 등 진보교육감들이 주창하는 '아래로부터 교육혁신'에 대한 걱정도 나타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경우 교사가 자율성을 가지고 학생 상황에 맞는 교육을 하는 전통이 "교육의 질이 떨어졌다"고 주장하는 일부 우익성향 학부모들 때문에 흔들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도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지금 한국 보수세력이 힘을 잃기는 했지만, 언제든 다시 돌아와 교육 수준이나 시험성적이 예전보다 떨어졌다는 이유를 들며 그간 (교육혁신) 성과를 뒤엎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애플 교수는 최근 한국 교육계가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고민에 집착하는 것도 비판했다.
그는 "교육을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볼 수는 없다"면서 "인공지능 사회에 도움될 인재를 양성하는 데 교육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은 과학기술과 수학 등에 초점을 맞춰 교육하는데 직업 중 80%는 과학이나 수학이 필요 없고 대부분 시민의식이나 학습을 계속하는 의지,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치관 등이 요구된다"며 "한 가지 목적을 위해 교육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애플 교수는 "삼성 등 대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교육계에) 주문하도록 두지 않고 교육 당국이나 교사들이 교육 어젠다를 통제하고 민주적 방식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피해 한국에 왔다"고 농담할 정도로 트럼프 정부에 대한 날 선 비판을 내놨다.
애플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적이지는 않지만 영리하고 능력 있는 정치인"이라면서 "미국민들이 다른 인종이나 이민자에게 두려움을 갖도록 만들어 실업 등의 책임을 대기업이나 사회구조에 돌리는 것을 막는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비교해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더 명확하게 제시했다"면서 "한국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그쪽으로 움직이려는 나라로, 완벽하진 않지만 국제사회에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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