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서 6년 만에 개인전…신작 11점 출품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독일 문예평론가(1892~1940)인 발터 베냐민은 1935년 쓴 논문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예술작품의 고유한 특성인 '아우라'(aura) 개념을 설명했다.
독일 작가 팀 아이텔(46)은 6년 만의 한국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베냐민의 아우라 정의, 즉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어떤 멀리 있는 것의 일회적인 나타남'(the unique apparition of a distance, however near it may be)을 떠올렸다.
아름다운 예술작품뿐 아니라 모든 사람과 사물에도 아우라가 있다.
가까이 있지만 유심히 살피지 못했던, 그래서 우리와 멀리 있는 대상들이 아이텔 작업의 주인공들이다.
곯아떨어진 남자, 거리를 떠도는 노숙자, 쓰레기 더미 등 도심의 그늘진 풍경들을 촬영한 작가는 필요한 이미지를 추출해 전통적인 회화 기법으로 그려낸다.
한국 개인전 '멀다. 그러나 가깝다'(영어명: Apparition of a Distance, However Near)에 출품된 11점 회화는 지난 1, 2년간 제작한 최신작들이다.
독일 현대회화를 이끌어가는 뉴-라이프치히파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인 작가는 지난 20년간 다뤄왔던 소재들을 다시 한 번 주인공으로 삼아 작업했다.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각각 가로·세로 2m의 유화 '암층'(2017)은 줄지어 산길을 가는 네 사람의 뒷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2004, 2005년 작업을 본뜬 것으로 과거보다 밝은 색감을 쓴 것이 차이점이다.
작가는 뒷모습이나 고개 숙인 모습 등을 그려 인물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세부적인 묘사는 없앤 채 배경을 단색 면으로만 남기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 덕분에 관람객은 특정한 시·공간과 인물을 떠올리는 대신, 그림 속 주인공에 자신을 투영하기 쉽다. 화려한 기교는 없어도, 작품 앞에 왠지 오래 머물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암층'을 응시하던 작가는 29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림을 보고 있는 당신이 (그림 속 4명에 더해) 5번째 등장인물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학고재갤러리는 "작가는 보편적인 대상과 배경을 그려 관람객에게 해석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한다"라면서 "관람객은 자신을 제삼자 눈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통해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작품 '건축학 학습'(바라간)은 인물의 모호한 이미지, 공간의 철저한 연구 등 작업의 주요한 요소를 망라한 작품이다.
작가는 2015년부터 프랑스 파리의 유명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 회화과 최연소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시는 11월 12일까지. 문의 ☎ 02-720-1524.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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