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최고령' 김남조 시인, 열여덟 번째 시집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나의 시는/ 격심한 아픔의 체험이 없고/ 단두대에 선/ 사형수의 심정을 모른다/ 나의 시는/ 고뇌와 탐색이 부족하고/ 나의 시는/ 감상과 회고주의에 부침하며/ 세계와 미래에 관해 무지무능하다/ 고작 부족하다 부족하다고/ 자주 탄식한다" ('시 학습·1' 부분)
김남조(90) 시인은 새 시집 '충만한 사랑'(열화당)에서 자신의 시가 아직도 부족하다고 자책한다. "현란한 어휘"와 "나태한 정신"을 경계하고 "상념의 심도"와 "정직한 개성"을 지향한다고 했다. ('시 학습·2')
2013년 '심장이 아프다' 이후 4년 만에 묶은 열여덟 번째 시집이다. 올해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한 '시계'를 포함해 63편이 실렸다. 공식 출간일은 만 90세 생일이었던 지난 26일에 맞췄다.
"사람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미숙하지만 90대에 이르러서는 분별이랄까, 안 보이던 게 보입니다. 한 문이 닫힐 때 다른 문이 조금 열리고, 한쪽 무게가 줄면 다른 저울에 무게가 보태지듯이요. 보인다는 것, 들린다는 것, 이런 원초적인 것에서도 인간이 얼마나 큰 축복과 은혜로 태어났는지를 느낍니다."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낸 시인은 어느새 현역으로 활동하는 최고령 시인이 됐다. 구순이 된 시인은 "나도 처음이오"라며 웃었다. 낙엽도 달리 보인다고 했다. 낙하해 빛 바래기 이전, 나뭇가지와 이파리의 끊어짐을 본다.
"단 한 번/ 결연한 추락으로 땅 위에 뛰어내리는 낙엽들/ 그랬었구나/ 그랬었구나/ 처음으로 눈 뜬 사람처럼/ 오래 바라본다// 날이 저문다" ('낙엽' 전문)
새 시집에는 60여 년 동안 화두로 삼아온 사랑과 구원의 문제와 함께,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상념도 담겼다. 시계는 이제 구순이라고 일러주지만, 시인은 여전히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다.
"시계가 나에게 묻는다/ 그대의 소망은 무엇인가/ 내가 대답한다/ 내면에서 꽃피는 자아와 / 최선을 다하는 분발이라고/ 그러나 잠시 후/ 나의 대답을 수정한다/ 사랑과 재물과/ 오래 사는 일이라고" ('시계' 부분)
시인은 가능하면 또 한 권의 시집을 묶고 싶다고 했다. "오래 살다 보니 부끄럽고 송구하기도 하지만 전과 다른 시점이 있다"며 "노화와 더불어 얼마간의 성숙이 수반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시 쓰는 일은 이제 몸의 일부다.
"나는 할 줄 아는 게 문학이었습니다. 이게 금지당한다면 신체 일부의 손실같이 균형이 안 잡히고 허탈할 거예요. 보통 상식으로 내 나이면 끝이다 싶은데 감성의 고갈이 없고 상이 잡히면 하나 더 내는 게 희망입니다. 나이 구십이 되면 신체가 허약하고 체력이 가난해지면서 감성적으로는 새롭게 눈 뜨는 것 같습니다. 이 그릇이 비면 저 그릇을 조금 보태주시는 주님의 뜻을 느끼지요." 174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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