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사망전 "눈이 흐려진다 천천히 걷자" 말해(종합2보)

입력 2017-10-02 23:11  

김정남, 사망전 "눈이 흐려진다 천천히 걷자" 말해(종합2보)

사망 당시 목격자들 첫 공개증언…살해 혐의 여성들 "우리도 피해자"

2달여간 증인 153명 진술 공방 예고…고의성 입증이 최대쟁점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한 동남아 출신 여성들에 대한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은 2일 김정남 살해 혐의로 기소된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5)와 베트남 국적자 도안 티 흐엉(29)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두 사람은 올해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지 검찰은 이들을 3월 초 살인 혐의로 기소했지만,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상급법원으로 사건이 이첩되는 절차를 밟으면서 이후 거의 8개월이 되도록 본격적인 재판이 진행되지 못했다.

검찰은 인도네시아어와 베트남어로 시티 아이샤와 도안 티 흐엉에 대한 기소장을 낭독하며, 이들이 김정남을 살해할 의도를 갖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피고인은 유죄를 인정하느냐는 물음에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

시티 아이샤와 도안 티 흐엉은 올해 2월 현지 당국에 체포된 이후 리얼리티 TV쇼 촬영을 위한 몰래카메라라는 북한인 용의자들의 말에 속았을 뿐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해 왔다.





이날 재판에는 화학무기 공격을 받은 김정남을 공항 내 진료소로 안내한 현지 경찰관 및 안내센터 직원과 진료소에서 근무하던 의사와 간호원 등 4명이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첫 증인으로 나선 모흐드 줄카르나인 사누딘(31) 일경은 "통통한 얼굴의 살찐 남성이 안내센터 직원과 함께 와서 여성 두 명이 얼굴에 뭔가를 발랐다며 신고를 하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그의 얼굴에는 액체가 조금 묻어 있었고 눈이 조금 충혈돼 있었다"면서 김정남이 일단 치료부터 받고 싶어 해 공항 내 진료소로 데려갔다고 말했다.

피습 장소에서 공항내 진료소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긴 편이 아니지만 김정남은 "천천히 걸어달라. 눈이 흐려져서 앞을 볼 수가 없다"고 말했으며 "진료소에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의료진이 응급처치를 실시했다"고 모흐드 일경은 전했다.

결국 김정남은 피습 후 약 20분 만에 사망했다.






김정남을 처음 치료했던 의사인 닉 모흐드 아즈룰 아리프 자야 아즐란과 간호사 라비아툴 아다위야 모하마드 소피는 김정남이 자신들의 질문에 응답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고 말했다.

닉은 "(처음) 봤을 때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눈은 꽉 감은채였고 벌개진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면서 김정남이 곧 이를 악물고 눈이 뒤집히는 등 발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김정남은 직후 의식을 잃었고 진료소에 들어올 당시 매우 높은 수준이었던 혈압이 최고 70 최저 40까지 급락한 뒤 맥박이 끊겼다.

하지만 시티 아이샤의 변호를 맡은 구이 순 셍 변호사는 "아이샤는 김정남의 얼굴에 바른 물질이 독이란 걸 몰랐다. 그녀 역시 이번 사건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시티 아이샤는 올해 초 북한 국적자 리지우(일명 제임스·30)와 홍송학(34)에 의해 쿠알라룸푸르 현지에서 포섭됐다.

중국시장 판매용 TV 리얼리티쇼 제작자인 '장'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홍송학은 수차례 예행연습을 시킨 뒤 2월 13일 오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을 공격하라며 시티 아이샤의 손에 VX 신경작용제를 발라줬다고 구이 변호사는 말했다.

국가정보원은 홍송학을 북한 외무성 소속 요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는 오종길(55), 리지현(33), 리재남(57) 등 다른 용의자들과 함께 범행 당일 출국해 북한으로 도주했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기소장에 시티 아이샤와 도안 티 흐엉이 다른 공범 4명과 함께 김정남을 살해할 공동의 의사를 갖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기재했으나 이들의 신원을 적시하지는 않았다.

변호인들은 공정한 재판을 위해 검찰이 공범들의 신원을 명확히 할 것을 요구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지우 등 다른 북한 국적 용의자들은 치외법권인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에 숨어 있다가, 말레이시아 당국이 북한내 말레이시아인을 전원 억류해 인질로 삼은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굴복한 3월 말 출국이 허용됐다.

이와 관련, 시티 아이샤와 도안 티 흐엉의 모국인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선 말레이시아가 북한 정권과 타협을 하는 바람에 '깃털'에 불과한 여성 피고들만 희생양이 됐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고의로 살인을 저지를 경우 사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한 말레이시아 현지법상 유죄가 인정될 경우 두 사람은 교수형에 처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검찰과 변호인단은 향후 두 달 이상의 기간에 걸쳐 진행될 이번 재판에 국내외 전문가 등 153여 명을 증인으로 세울 예정이다.

hwang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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