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수학자들 주장…"근거 불충분" 회의론 우세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3천700년 전 바빌로니아에서 만들어진 점토판에 대해 그 정체가 일종의 '삼각함수표'라고 주장하는 논문이 나와 수학사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논란은 이라크 남부에서 20세기 초에 발견돼 현재 미국 컬럼비아대에 소장돼 있는 '플림턴 322'(Plimpton 322)라는 가로 13cm, 세로 9cm, 두께 2cm인 점토판의 정체에 관한 것이다.
글자 모양으로 보아 기원전 1800년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점토판에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설형(楔形·cuneiform·쐐기꼴) 문자로 4열 15행의 60진법 자연수들이 새겨져 있다. 고대 세계에는 문자와 숫자의 별도 구분이 없었다.
이 중에서 가장 오른쪽 열은 1∼15의 자연수를 차례로 나열한 것이며, 가장 왼쪽 열은 일부가 소실돼 있어 해석의 여지가 있으나 가운데 두 열은 완벽히 읽을 수 있는 상태다.
영화 주인공 '인디애나 존스'의 실제 모델로 여겨지는 미국의 외교관·모험가·고고학자 에드가 제임스 뱅크스(1866∼1945)가 발견한 이 점토판의 정체에 대해서는 수십년간 여러 견해가 나왔으나 의견이 통일되지 않고 있다.
이 점토판에 이른바 '피타고라스 정수(整數)'(a²+ b²= c²이라는 관계를 만족하는 양의 정수 a, b, c)들이 적혀 있다는 점은 1940년대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그 이유에 대한 해석은 분분했다.
올해 8월말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 대니얼 맨스필드 교수와 노먼 윌드버거 교수는 수학사 학술지 '히스토리아 마테마티카'(Historia Mathematica)에 플림턴 322의 정체가 일종의 삼각함수표라는 의견을 담은 논문을 냈다. 다만 이런 견해는 이들이 완전히 독창적으로 내놓은 것은 아니고, 과거 제기됐던 주장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 점토판에는 직각삼각형을 이루는 세 변의 길이가 적혀 있다고 이들은 해석했다. 이는 각의 크기에 따른 사인·코사인·탄젠트 값을 적어 놓는 현대의 삼각함수표와는 다르지만, 이 표를 통해 직각삼각형 변들의 비, 즉 삼각비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삼각함수표라고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맨스필드 교수는 "삼각법을 보는 방법이 완전히 다른 것"이라며 "우리는 사인과 코사인 식으로 표현하는 쪽을 선호하지만, 이 점토판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우리 문화에서 벗어나서 그들의 시각에서 봐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분석에 대해 근거가 박약하다고 맞서는 목소리도 높다.
스웨덴 찰머스공대 명예교수인 요란 프리베리는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와 인터뷰에서 바빌로니아인들은 삼각비에 대해 알지 못했다며 맨스필드와 윌드버거의 의견을 반박했다.
프랑스 파리 소재 국립과학연구센터에 재직중인 수학사학자 크리스틴 프루스트는 맨스필드와 윌드버거의 논문에 관해 '사이언스'에 "매우 매혹적인 생각"이라면서도 바빌로니아인들이 직각삼각형 문제를 풀거나 이해하기 위해 이런 점토판을 썼다고 생각할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베를린 훔볼트대의 고대과학사학자인 마티외 오센드리베르는 "바빌로니아인들이 실제로 이 점토판을 그런 방식으로 썼는지에 대한 증명이 없다"며 "현재로서는 (답이 없는) 열린 질문"이라고 말했다.
삼각법은 고대 세계에서 천문학 또는 역법이나 측량법의 일부로 점진적으로 발달해 왔기 때문에 삼각법의 정확한 시초를 꼽기는 힘들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각에 대한 현(弦)의 길이를 표시하는 표가 히파르쿠스(190BC∼120BC)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것이 삼각함수표의 시초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우리가 익숙해 있는 것처럼 각에 따른 삼각비를 표시하는 방식은 아니다.
각에 따라 사인·코사인·탄젠트 등 삼각비를 표시하는 현대 방식 삼각함수표는기원후 800년대 초에 바그다드의 수학자 무함마드 이븐 무사 알-콰리즈미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며, 그의 수학 저작이 유럽과 중국에 전해지면서 지금 형태와 같은 삼각비 표가 널리 쓰이게 됐다.
solatid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