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 뒤에 선 이범호…호랑이 승부욕 깨운 '김기태 매직'

입력 2017-10-03 17:35  

포수 뒤에 선 이범호…호랑이 승부욕 깨운 '김기태 매직'

특유의 카리스마로 선수단 마음 얻은 뒤 투혼까지 심어줘

상위 전력 구축한 올해는 '동행 야구'로 꽃피워




(수원=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형님 리더십'은 KIA 타이거즈를 8년 만에 정규시즌 정상으로 이끈 김기태 감독(48)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다.

현역 선수 시절부터 후배로부터 신망받는 선배였던 김 감독의 카리스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 연수 시절까지 발휘됐다.

LG 트윈스, KIA 감독을 지내면서 선수들이 먼저 따라오게 만드는 김 감독 특유의 지도력은 원숙미를 더해갔다.

김 감독의 팀을 장악하는 능력만큼은 역대 프로야구 명감독들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KIA가 8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명문 구단 재건에 성공한 요인 중 하나로 김 감독의 지도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렇지만 프로야구 감독이 단순하게 선수단을 휘어잡는다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 수 있는 건 아니다.

우승에 도전할만한 전력이 갖춰져야 하고, 선수단은 승리에 대한 강한 열망을 시즌 내내 유지해야 한다.

9번의 우승을 일굴 해태 타이거즈는 상대하는 팀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승리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의 마음에 잠들어 있던 승부욕을 깨우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그 사례가 바로 '이범호 시프트'다.




김 감독은 KIA 부임 첫해인 2015년 5월 13일 광주 kt wiz전에서 5-5로 맞선 9회 초 2사 2, 3루에 3루수 이범호를 포수 뒤로 보냈다.

투수 심동섭이 종종 폭투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심판진은 '인플레이 상황에서 모든 야수는 페어지역에 머물러야 한다'며 이범호를 3루에 돌려보내며 김 감독의 '묘수'는 실현되지 않았다.

선수에 따라서는 '감독이 날 믿지 못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범호와 심동섭 모두 다른 걸 느꼈다. 절대 지고 싶지 않다는 김 감독의 승부욕이다.

이들이 '파격 작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건 이미 김 감독이 선수단의 마음을 사로잡은 덕분이다.

김 감독 부임 직후인 2015년, KIA는 상위권 팀과 비교해 한 수 아래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이에 김 감독은 "우리는 남들과 똑같이 하면 못 이긴다. 색다른 방법,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해야 조금이라도 차이를 줄일 수 있다"며 '파격 작전'을 들고나오는 이유를 설명했다.

2015년 잠실 LG전에서 3피트(91.44㎝)와 관련해 김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그라운드에 누운 것도 유명한 일화다.

KIA 선수단은 이를 '우리 감독님이 부끄럽게 왜 저럴까'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이기고 싶어서 체면을 내려놓았다'고 받아들였다.




김 감독은 부임 첫해인 2015년 8위에 그쳤지만, 2016년 5위로 와일드카드 출전권을 획득해 5년 만에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렸다.

그리고 이번 시즌 김 감독은 '동행 야구'로 이제껏 모아 온 꽃봉오리를 모두 틔워내는 데 성공했다.

김 감독은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을 겪던 김주찬과 새 외국인 선수 로저 버나디나를 내치는 대신 동행하는 길을 택했다.

성적이 부진한 선수를 계속 기용하려면 그들에게 밀려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들의 마음마저 달래야 한다.

김 감독은 지난 2년 동안 선수단에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뚝심 있게 팀을 이끌었다.

덕분에 김주찬과 버나디나는 시즌 중반 이후 살아나 KIA의 정규시즌 우승을 이끄는 견인차 구실을 해냈다.

시즌 한때 0.160까지 떨어져 규정타석 최저에 머물렀던 김주찬의 타율은 이제 3할을 훌쩍 넘었고, 버나디나는 30홈런-30도루를 바라볼 정도다.

외국인 투수 팻딘의 부활도 김 감독의 뚝심이 있어 가능했다.

KIA 구단 관계자는 "부진한 선수에 대한 비난이 심했을 때 감독님이 든든하게 막아주신 덕분에 선수들도 살아날 수 있었다. '동행 야구'가 무엇인지 보여주셨다"며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이제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바라본다.

현역 시절 쌍방울 레이더스(1991∼1998년), 삼성 라이온즈(1999∼2001년), SK 와이번스(2002∼2005년)에서 한 번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김 감독은 코치로도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

김 감독의 '승부욕을 품고 동행하는 형님 리더십'이 한국시리즈에서도 발휘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4b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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