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못 가는 쪽방주민·장애인 서울서 합동 차례 지내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현혜란 기자 = 추석 당일인 4일 오후 4시 16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장에는 흰 국화를 손에 든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 등 50여명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이들은 광화문 분향소에 추석 차례상을 겸해 마련된 제단에 차례로 향을 피우고 헌화하며 희생자들을 기렸다.
바나나와 사과, 배, 감 등 과일과 생선, 한과 등이 올려진 차례상 뒤편 벽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정이 걸렸다. 그 앞으로는 '아직 세월호에 5명의 미수습자와 유품이 있습니다'라는 글이 지방(紙榜)처럼 적혀 있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우리가 이렇게 모이고 함께 위로하고 추모하는 것은 아직 어떤 것도 밝혀진 사실이 없기 때문"이라며 "아직 목포신항에는 (미수습자) 가족들이 세월호 수습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정권교체 이후에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적폐청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가족들과 참가자들은 미수습자의 이름을 부르며 조속한 수습을 기원했고, 희생자들을 돕다 유명을 달리한 잠수사들도 추모했다.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는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례상이 차려졌다.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학비연대) 소속 교육공무직본부가 차린 이 차례상에는 진짜 음식은 없고 모두 종이 사진을 오려 붙인 가짜 음식들만 놓였다. 이들이 교육청 앞에서 8일째 단식농성을 벌이는 중이기 때문이다.
학비연대는 "교육부와 교육청이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는 안을 고집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단식 투쟁을 외면해 추석 명절을 단식 농성장에서 보내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차례를 마치고 '교육감은 근속수당 지급하라' 등의 문구가 쓰인 지방을 태웠다.
고향에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은 쪽방촌 주민과 장애인들도 합동 차례·공동 차례라는 이름으로 차례상을 차려놓고 가족·친지와 만나 조상을 찾아뵙지 못하는 마음을 달랬다.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희망나눔센터에는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공동 차례상이 차려졌다.
주민 50여명은 낡았지만 깨끗하게 단장한 옷을 입고 단출하지만 홍동백서(紅東白西)·조율이시(棗栗梨?) 순서대로 과일이며 한과며 고기가 놓인 차례상을 향해 차례로 절을 올렸다.
서울역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고향에 갈 수 있는 쪽방촌 주민들은 앞서 서울시에서 마련한 차편으로 고향에 내려갔다"며 "오늘 공동 차례를 지낸 분들은 고향에 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동권 보장을 위해 서초구 반포동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광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들도 합동 차례를 지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비장애인 활동가 20명과 휠체어를 탄 장애인 10여명은 농성장에서 차례를 지내며 고향에 못 가는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중구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한가위 행사인 '남산골 추석 모듬' 행사의 하나로 단체 차례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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