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필리핀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사법부와 반부패기구 수장이 탄핵 위기에 몰리고 있다.
5일 GMA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날 오후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어 반부패기구인 옴부즈맨 사무소의 최고 책임자인 콘치타 카르피오 모랄레스와 마리아 루르데스 세레노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모랄레스를 겨냥해 선택적인 정의를 행사하고 위조된 서류를 이용한다고 비난했다.
정부 관리들의 독직과 부패를 조사하고 민·형사상 행정 소추를 담당하는 옴부즈맨 사무소가 최근 착수한 두테르테 대통령의 재산은닉 의혹 조사를 두고 한 말이다.
앞서 안토니오 트릴라네스 상원의원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과거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 시장으로 재직할 때 은행 계좌에 24억 페소(541억 원)를 숨겨놓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테르테 대통령은 "내 예금이 4천만 페소(9억 원)를 넘으면 나를 쏘라"며 재산은닉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오히려 옴부즈맨 사무소가 경찰, 지방관료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독직 사건을 눈감아줬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이 기구를 조사할 위원회를 설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모랄레스는 "헌법상 위임받은 임무에 따라 조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맞섰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세레노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부패 의혹을 탄핵 사유로 거론했다.
세레노 대법원장 탄핵안은 한 변호사에 의해 의회에 이미 제출돼 있다.
래리 가돈 변호사는 세레노 대법원장이 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구매, 호화 출장, 불성실한 공직자 재산 신고 등으로 헌법을 위반하고 국민 신뢰를 배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레노 대법원장이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에 비협조적인 점도 탄핵 사유로 들었다.
세레노 대법원장은 작년 8월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매매 연루 의혹이 있는 판사와 군인, 경찰관 등 160여 명의 명단을 공개하며 자수를 권하자 이를 비판하며 해당 판사들에게 체포 영장 발급 전까지 경찰에 자수하지 말도록 했다.
세레노 대법원장은 또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난 5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세력 소탕을 내세워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에 계엄령을 선포하자 "과거 마르코스 정권 때처럼 반대파를 탄압하는 데 악용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현재 의회는 친두테르테 진영이 장악하고 있어 정부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탄핵안을 의결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야권의 에드셀 라그만 하원의원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민주적 기구들을 파괴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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