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수 미술관장 네트워크 이끌어…호주현대미술관장 18년째 재직
"세계 위기 속에서 미술관 더 중요해져…공론의 장 역할"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세계적 위기 속에서 미술관이 더 중요해졌어요. 동시대 이슈를 함께 논의할 장소가 필요하니깐요. 사람들은 미술관에 모여 기후변화를 토론할 수도 있고, 서로 어떻게 다른지 알아가기도 하죠."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엘리자베스 맥그레고르 국제근현대미술미술관위원회(CIMAM) 회장은 아고라로서 미술관의 존재 의미를 수차례 강조했다.
그가 올해부터 이끌고 있는 CIMAM은 세계 각국 현대미술관 관장, 선임 큐레이터의 네트워크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맥그레고르 회장 자신도 만 18년째 시드니의 호주현대미술관(MCA)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바르토메우 마리 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도 2014~2016년 CIMAM 회장을 지냈다.
CIMAM은 전시 기획, 작품 수집, 후원자 지원 등 각 미술관이 운영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돕는다.
맥그레고르 관장은 "예술가들은 가령 난민이라는 이슈를 다룸으로써 그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발할 수 있다"면서 "미술관은 이러한 예술가들과 대중을 잇는 가교 구실을 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예술작품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어요. 예술가들은 그렇게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창의력입니다. 미술관이 창의력을 포용하지 않으면 우리 자리는 금방 로봇이 대신하지 않을까요?"
그는 각국 미술관이 더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펴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현대미술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전반적으로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미술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미술관이 샵이든 카페든 어떤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봐요. 예전처럼 미술관에서 이 전시 저 전시 보고 기념품 사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친구를 만나거나 사회 활동을 할 수 있죠."
호주현대미술관에서도 10대 청소년을 위한 젠넥스트(Genext)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매년 6차례 실시되는 젠넥스트는 청소년들이 직접 위원회를 구성해 미술관 운영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만나고 싶은 작가도 선정해 만남을 주선하는 행사다. 행사일만큼은 "젊은이들의 미술관"으로 변모한다.
"11년 전 참가자 100명으로 시작했는데 이제 1천 명이나 되는 청소년이 참가할 정도로 호응이 뜨겁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티켓을 올리는 즉시 매진된다"고 전하는 맥그레고르 관장의 얼굴에서는 뿌듯함이 묻어났다.
맥그레고르 관장은 일주일의 방한에서 미술관, 아트페어, 스튜디오 등 한국 미술의 다양한 현장을 숨 가쁘게 둘러봤다. 이불, 강애란, 박찬경, 백승우 등의 이름을 열거하던 그는 "백남준의 후예들이 보여주는 예술이 인상적이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백남준이라는 거장의 유산을 이어받지 않나요. 기술 그 자체나 기술에서 파생되는 아이디어나 관념을 많이 다루는 것 같아요. 기술을 우리 도전 과제,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거나 긍정적으로 본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그는 그러면서 "또 하나 한국 예술현장에서 재미있는 점은 폴 매카시, 줄리언 오피 등 세계적 수준의 예술가 전시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호주는 매우 운이 좋은 나라에요. 다채로운 주제들을 예술을 통해 자기네들이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 풀어가죠. 미술관은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그만큼 다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봐요."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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