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지난해 9월 국방통합데이터센터(DIDC)가 북한인으로 보이는 해커조직에 뚫렸을 때 '작전계획(작계) 5015'를 비롯한 중요 군사기밀이 대량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10일 "당시 우리 군 인터넷망과 내부 인트라넷(국방망)에서 235GB(기가바이트) 분량의 자료가 유출됐다"며 "북한 전쟁지도부에 대한 '참수작전'의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있는 '작계 5015' , 침투·국지도발 대응 계획인 '작계 3100' 등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 검찰단이 지난 5월 이 사건을 북한 해커조직의 소행으로 결론 내리고 수사결과를 발표했을 때와는 충격의 강도가 사뭇 다르다. 당시에도 다수의 군사자료가 유출됐다고 발표는 했지만 유출된 기밀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아 사안의 심각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 의원이 국방부에 확인한 대로 작계 5015 유출이 사실이라면 최신 작계 누출에 따른 파장은 물론 사후의 안이한 대처까지 걱정스러운 일이 한둘이 아니다.
작계 5015에는 유사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지, 전쟁지도부 등을 선제타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북한과의 전면전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의 '작계 5027'을 대체해 2015년 6월부터 발효됐다. 미군 증원군이 한반도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반격하는 방어적 개념을 넘어 북한의 공격 징후가 있을 때 핵심시설을 먼저 타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전쟁지도부에 대한 제거 계획도 포함돼 있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더없이 중요한 우리 군사작전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데 운용된 지 불과 1년여 만에 북한 수중에 넘어간 것이다. 북한이 이를 갖고 무엇을 할지는 불문가지다. 선제공격 대상이 되는 시설을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엄폐시설을 만들고, 전쟁지도부에 대한 경호를 강화하는 등 작계 5015를 무력화하는 치밀한 대책을 세웠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패를 먼저 공개하고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작계 5015 이외에도 한미 고위지휘관에 대한 업무보고 자료, 군부대와 발전소 등 국가 중요시설 현황자료와 방호계획 등 2급 기밀 226건, 3급 기밀 42건, 대외비 27건이 유출됐다고 한다. 사이버 해킹 대책을 소홀히 해 이런 중요 기밀이 무더기로 넘어간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아직도 어떤 기밀이 얼마나 더 유출됐는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비정상적인 경로의 통신량을 토대로 외부에 유출된 데이터 총량이 235GB인 것은 확인했지만, 이 중 80% 가까운 182GB는 해킹 흔적이 지워져 어떤 내용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슨 기밀이 얼마나 노출됐는지 알아야 대책이라도 세울 텐데 답답한 노릇이다.
우리 군은 지난 5월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유출된 자료 목록을 일일이 설명하면 적에게 그것이 기밀자료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벌 없이 관련자 20여 명을 징계 의뢰하는 선에서 사건을 매듭지었다. 중요 군사기밀이 대거 유출된 사실을 숨긴 채 흐지부지 넘어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군 당국은 이 의원이 새로 밝힌 내용에 대해서도 군사보안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미 북한에 넘어간 군사기밀을 놓고 군사보안 운운하다니 사안을 덮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군사보안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군의 잘못을 가리는 데만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작계 5015를 꼼꼼하게 수정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작계 5015를 비롯한 주요 군사기밀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를 역으로 이용하거나 알고 있어도 대처하지 못하게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이 현실로 닥친 상황에서 재래식 전력을 활용하는 핵심 작전계획마저 무력하게 만들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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