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실험 vs 치밀한 서사…1980년대생 작가들 새 소설집

입력 2017-10-11 08:40   수정 2017-10-11 09:40

낯선 실험 vs 치밀한 서사…1980년대생 작가들 새 소설집

박솔뫼 '겨울의 눈빛', 임현 '그 개와 같은 말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박솔뫼(32)와 임현(34)이 나란히 새 소설집을 냈다. 각각 문학과지성사·문학동네가 주관하는 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목받는 1980년대생 작가들이다. 책 표지 그림은 맞춘 듯 비슷하지만, 작품들을 오늘날 한국소설의 스펙트럼 위에 놓고 보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박솔뫼는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단편 '겨울의 눈빛'으로 "소설언어에 대한 미학적인 자의식과 동시대의 사회적 상상력이 새로운 세대의 감각 안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문제적인 사례"라는 평과 함께 2014년 문지문학상을 받았다.

2011∼2015년 발표한 단편 9편을 엮은 두 번째 소설집 '겨울의 눈빛'(문학과지성사)에는 무기력과 허무에 둘러싸인 '잉여세대'가 등장한다. 인물들은 가끔씩 소심한 반항의 몸짓을 하면서도, 사회를 향한 관심을 드러낸다.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개입하는 대신 조용히 관찰하는 게 이들이 세상과 마주하는 방법이다. 작가는 낯설고 때로는 정돈되지 않은 듯한 문장을 혼잣말처럼 풀어놓는다.

표제작 '겨울의 눈빛'은 고리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난 상황을 가정한다. 화자가 사고를 접하는 장소는 원전사고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극장 안이다. 고리에서 20㎞가량 떨어진 부산 해운대의 평범한 사람들이 겪은 아픔을 기록한 영화다. 화자는 그러나 영화가 마뜩잖다. 심지어 개마저 사고의 여파로 악몽을 꾸는 듯하다는 대목에서는 웃음마저 나오려 한다.

"나는 차라리 한국수력원자력공사를 폭파하고 그곳의 간부들을 납치해서 인질극을 벌이는 말도 안 되는 그런 영화를 보고 싶었다. 간부의 머리 하나와 원전 하나씩을 걸고 한 시간 동안 대치를 벌이는 뭐 그런 영화."

'주사위 주사위 주사위'에는 광주민중항쟁과 일본군 위안부라는 두 가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교차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사장 간이화장실 근처를 지나는 화자는 아시아문화전당을 지으려면 광주민중항쟁 최후의 항전지였던 옛 전남도청 일부를 철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 떠올린다.

책에서 본 어떤 연극까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조선인 위안부가 변소에 갖다 버린 아이를 조선인 징용 노동자가 구해서 기르고, 나중에 아이를 찾으러 갔더니 일왕의 변소를 짓던 노동자가 일왕인 체한다는 줄거리다.

"친구들은 결혼을 했거나 회사를 다니거나 못 다니거나 오래도록 못 다니거나 드물게 안 다니거나" 하는 세대다. 사회적 발언권이 작고, 무용담을 늘어놓을 만한 참여 경험도 부족한 이들은 영화나 연극 같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기억하고 재구성한다. 이들의 역사 체험을 기록하는 작가의 태도 역시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박솔뫼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그 자리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어떤 자리에 멈춰버리는 것, 멈춰버리는 공간을 겹쳤을 때 나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에게 다가오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줄곧 하고 있다." 248쪽. 1만3천원.






임현은 올해 등단 10년 이내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았다. 첫 소설집 '그 개와 같은 말'(현대문학)에는 수상작 '고두'를 포함해 2014년 등단 이후 발표한 단편 10편이 실렸다.

임현은 치밀한 서사로 인물 내면의 깊숙한 지점을 헤집는다. 윤리의식과 진정성 같은 표피 아래 숨겨둔 폐부를 겨냥한다. 작가가 즐겨 쓰는 1인칭 화자의 자기고백적 서사는 독자의 마음속 울림을 증폭시키는 데 효과를 발휘한다.

"인간이란 본래 이기적인 존재고 그러므로 부단히 경계해야 하는데도 부도덕하고 불의한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줄로만 알아." '고두'의 화자는 모든 이타적 행동의 기저에 이기적 본성이 있다고 믿는 윤리 교사다. 화자의 위선과 자기기만은 술집에서 일한다는 소문에 시달리는, 그러나 사실은 술도 파는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는 제자 연주와 관계에서 정점에 달한다.

"함께 걷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며 집까지 바래다주길 반복하다가 모텔 골목에서 연주의 담임과 마주친 화자에게 연주는 안중에도 없다. 곤경에서 빠져나갈 궁리뿐인 화자 앞에서 담임은 연주의 뺨을 후려친다. 사랑을 고백하는 연주와 선을 넘은 일도 "온전히 연주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합리화한다.

'엿보는 손'은 자서전 대필과 예상표절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끌어들여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가능한지 되묻는 작품이다. 소설가 최종화는 자신의 미발표 원고와 똑같은 내용으로 출간된 유제호의 소설을 인터넷서점에서 발견한다. 유제호는 최종화가 과거 자서전을 대신 써준 세탁소 주인의 아들이었다.

평생 책을 읽은 적 없던 유제호의 아버지는 고전 명작에서 가져온 문장들을 짜깁기한 자서전이 자신의 진짜 삶인 양 여기고, 인생은 예상 못 한 경로로 흘러간다. 아버지의 삶에 함부로 끼어든 최종화에게 유제호는 이렇게 쓴다. "나도 몰랐던 내 아버지의 삶을 당신이 썼듯 나도 당신의 내밀한 부분을 쓰고 싶었습니다." 308쪽. 1만3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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