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5·18 당시 기록·증언 조사 첫 발표
"평화롭던 광주, 계엄군이 무력·과잉 진압"
(무안=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경찰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현장 경찰관들의 증언과 기록을 담은 첫 공식보고서를 냈다.
전남지방경찰청은 11일 5·18 직전 광주의 치안 상황과 계엄군의 과격 진압, 시위대의 무기 탈취 과정, 북한군 개입설 등에 대한 경찰 기록과 근무자 증언 등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남경찰은 경정급 1명, 경감 3명 등 6명으로 구성된 '5·18 민주화운동 관련 경찰 사료 수집 및 활동조사 TF팀'을 꾸리고 지난 4월 27일부터 5개월간 5·18 당시 경찰 활동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TF팀은 5·18 당시 현장 경찰관과 관련자 137명을 면담 조사했고 국가기록원과 5·18 기록관 등의 협조를 받아 군과 검찰, 광주시, 경찰 내부 기록 등을 조사했다.
특히 치안본부가 5·18 직후 작성했으나 지난 30년간 비공개로 설정돼있던 경찰 감찰자료인 '전남사태 관계기록'을 최초로 검토했다.
TF팀은 이날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5·18 직전 광주시내가 학생시위로 무질서해 군의 개입이 불가피했다거나 시위대의 총기탈취와 무장으로 인해 계엄군이 집단 발포를 했다는 군 기록은 상당 부분 왜곡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 치안일지에 따르면 5·18 직전 광주의 치안은 안정적이었고 경찰 요청이 아닌 군 자체 판단에 따라 1980년 5월 18일 오후 4시부터 계엄군의 광주 진압작전이 시작됐다.
시민들이 최초로 경찰관서의 무기를 탈취한 시점도 5월 21일 낮 계엄군의 도청 앞 집단 발포 이후인 5월 21일 오후 1시 30분 나주 남평지서에서 있었던 것으로 기록됐다.
군 당국은 시민들이 21일 오전 8시 나주 반남, 오전 9시 나주 남평지서에서 무기를 탈취했기 때문에 군이 자위권을 발동해 발포한 것으로 기록됐다고 주장해왔다.
경찰은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인구 73만명의 대도시에 대량의 무기가 유출됐음에도 광주 서부서 상황일지에만 강도사건 발생만 2차례 기록돼있고 재판 기록에도 강력사건이 3건만 확인되는 등 전반적으로 안정된 치안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군이나 정보기관 기록에는 시민군이 광주를 점령한 열흘간 약탈과 살인, 강도가 판치는 무법천지가 벌어졌다고 기술돼 있다.
TF팀은 조사 보고서에서 "시민 보호의 무한 책임이 있는 경찰이 5·18 당시 군의 과격진압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한 점, 포고령 위반자 검거와 같은 신군부의 수습 활동 참여 과정에서 과잉 행위 등 경찰의 미흡한 조치에 대해서도 반성과 사과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성복 전남지방경찰청장은 "5·18 경찰 책임론에 대해 진상조사나 기록이 없는 경찰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생존 경찰관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진실 규명에 도움이 되도록 이번 조사를 시행했다"고 설명했다.
강 청장은 "이번에 수집한 증언과 자료를 영구 보존하고 관련 자료와 참여자들의 증언을 계속 확보해 미흡한 점을 보완해 가겠다"고 말했다.
are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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