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 앞둔 일본군 사령관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입력 2017-10-11 13:17   수정 2017-10-11 13:43

"항복 앞둔 일본군 사령관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장편소설 '칼과 혀'로 혼불문학상 수상한 작가 권정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일본의 야욕으로 동아시아 역사에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만주국은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 세력이 생사를 걸고 맞붙은 싸움터였다.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권정현(47)의 장편소설 '칼과 혀'는 일제 패망 직전 만주국에서 펼쳐진 증오와 대결, 나아가 화해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그린다.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와 그를 암살하려는 비밀 자경단원 첸, 일본군 위안부로 고초를 겪다가 첸의 아내가 된 조선인 여인 길순이 번갈아 화자로 등장한다. 모리는 궁정에 침투했다가 발각돼 총살 위기에 놓인 첸에게 뜻밖에 요리 시험을 낸다. 첸은 요리사였고, 모리는 전쟁의 두려움을 잊으려고 맛에 집착하는 유약한 성격이었다.

송이버섯 요리를 만들어 죽음을 면한 첸은 점점 '궁극의 맛'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모리가 길순을 궁으로 불러들이면서 삼자 대결의 새 국면이 펼쳐진다.

"불과 싸우던 나의 시간도, 맵거나 짜거나 달콤하거나 시었을 온갖 요리의 맛들도, 우리를 아프게 했던, 시대가 만들어낸 순간의 고통일 뿐이라고. 한 접시의 요리가 깨끗이 비워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증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그 짧은 순간 나는 잘린 혀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319쪽)

'칼과 혀'는 정치·군사적 무기와 함께, 요리와 미각을 가리키는 이중적 상징이다. 부엌에선 세 사람의 고향 추억이 서린 한·중·일 요리가 만들어지고, 인물들은 음식을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기도 한다. 11일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혀에 닿는 순간 절정에 달했다가 맛과 향이 사라지는 요리처럼, 증오 역시 스스로를 넘어서 사랑으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작가의 생각은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붙잡힌 뒤 뤼순 감옥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결국 세 나라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선견지명 같은 얘기를 하셨어요. 식민지배의 원흉을 쏴 죽인 안중근 의사가 그런 말씀을 하신 게 처음엔 의아했죠. 결국 원수까지 사랑하는 게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아닐까요."

세 인물 가운데 모리는 실존 인물인 야마타 오토조(山田乙三)를 모티프로 삼았다. 소련군에 항복을 선언한 '관동군 마지막 총사령관'인 그는 실제로 전쟁을 두려워하는 성격의 소유자로 전해진다. 작가는 국경을 넘어오는 150만 소련군을 마주한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했다. "미국의 대부분 사형수들은 죽기 직전 가장 화려한 식사를 요청한다고 합니다. 야마타도 맛있게 식사를 하지 않았을까요. 거기에 착안해 썼죠."

작가는 '칼과 혀'를 쓰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했다. 만주의 역사를 다룬 책들과 한식 요리사 친구가 도움을 줬다. 무속신앙과 신화를 토대로 과거와 현재의 접점을 보여주는 열두 권 분량의 대하소설을 쓰다가 막힌 상황이었다.

작가는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을 읽으며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내밀한 풍경을 알 수 있듯, 이 소설이 100년 뒤에도 우리나라 역사의 지점들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힘의 균형을 맞추려 하거나 거기에 기생하는 사람들, 견디는 민중들의 이야기가 앞으로도 제 소설의 주요 테마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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