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안보분석 업체 "이란 핵협정 파기 쉽지않다…트럼프,의회에 미루고 손털기 작전"
美, 중동에서 아낀 힘 中·러·北에 돌리려 해…이란, 터키·러시아 위협에 美와 화해 필요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앙숙 관계인 미국과 이란 간 거친 말싸움이 고조되면서 이란 핵협정의 운명이 위태로운 지경이지만, 긴 호흡으로 보면 당초 핵협정을 낳았던 지정학적 요인은 여전히 변함이 없기 때문에 그 힘이 양국을 점점 접근시켜 화해로 이끌게 될 것이라고 미국의 외교안보분석 업체 스트랫포의 매슈 베이 선임분석가가 전망했다.
베이는 10일(현지시간) 스트랫포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번 주 포괄적인 대 이란 정책을 발표하면서 이란의 핵협정 준수에 대해 '불인증'을 선언함으로써 이란에 대한 제재를 재개할지 여부를 60일간의 의회 심의에 넘길 공산이 큰 것으로 봤다.
▲트럼프, 의회에 공 넘기고 손 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협정 파기 위협엔 2가지 목적이 있다. 중동지역에서 이란의 영향력 확대에 고삐를 죄거나 이란을 재협상으로 끌어들여 이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헤즈볼라와 하마스 등에 대한 지원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 전략은 이란 핵협정 체제의 균열로 인해 협정 자체의 붕괴로 이어질 위험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애초 핵협정이 성사된 배경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도박이 보기만큼 그리 위험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고 베이는 분석했다.
지난 10년에 걸쳐 미국은 대중동 개입을 줄여, 옛 소련 땅에 대한 힘을 키우고 있는 러시아와 미국의 경쟁국으로 부상하는 중국 대처에 여력을 쏟는 방안을 추구해왔다. 중동에선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역내 강국 간 상호 견제하는 균형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의 핵무기 추구는 미국이나 유럽으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란 핵협정은 전쟁 위험 없이 이란 핵 프로그램의 진전을 중단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미국이 중동에서 소진하는 힘을 아껴야 할 필요성은 오늘날 더욱 커졌다. 중국, 러시아 문제 외에 한반도 핵위기까지 더해진 것이다. 이란이 다시 핵 개발을 추구하고 그로 인한 갈등이 발생하면, 유라시아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시급한 현안들에 대처할 미국의 힘이 분산되고, 북한에도 미국과 핵 협상은 무용하다는 신호를 주게 된다.
게다가 미국이 대이란 제재를 재개할 경우 자국 기업들이 손해를 보게 될 유럽은 이란이 핵협정을 준수하는 한 제재에 반대할 공산이 크다. 유럽은 이미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다짐했을 정도다.
베이는 "이 모든 요인으로 미뤄 미 의회가 대이란 제재 재개를 결정하기는 어려우며, 트럼프 행정부도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선거기간 이란 핵협정 파기를 공언했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의회에 공을 넘김으로써 자신은 대이란 강경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의회라는 방패 뒤에서 핵협정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손을 털 수 있는 것이다.
▲이란, 국내 여론 때문에도 핵 개발 재개 쉽게 못 한다
"서방에 비치는 이란의 이미지는 파트너로선 상궤를 벗어난, 못 믿을 나라라는 것이지만 세계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란도 자국 내 제약과 필요성에 따라 행동하는 합리적 행위자이다. 그중에서도 최우선은 생존이라는 절대적 필요성"이라고 베이는 진단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서쪽으로부터 외침을 받아온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오래지 않아 사담 후세인의 침공을 받고는 대이라크 억지를 위해 팔레비 왕정 때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재개했다.
그러나 "이란은 사담이 미국의 공격에 몰락한 것을 보고는 이미 2003년 핵무기 개발 활동 대부분을 중단하고는, 그 프로그램이 진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미국과 대타협을 추진하는 데 활용했다"고 베이는 설명했다.
이 전략은 그러나 협정이 타결될 때까지는 자국 경제에 파괴적인 서방의 제재를 초래했다. 이로 인한 이란 국민의 불만은 이란 정권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가 됐고 "북한의 독재가 누리는 면책성을 갖지 못한 이란 지도자들은 안정의 최대 위협이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베이는 말했다. 이란 국민 사이에서 핵무기 프로그램 때문에 치러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불만이 쌓여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란은 핵무기 개발에 관해 성급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피하면서 핵 개발 재개 여부를 갖고 미국과 유럽 간 관계에 틈을 벌리는 데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베이는 예상했다.
▲지정학상 미국-이란 장기 국익 나란히 배열되기 시작했다
이란의 대외 비난 표적은 줄곧 미국을 향한 것이지만, 정작 이란의 안보이익에 더 위협적인 나라는 터키와 러시아다. 미국이 중동 개입을 줄이는 상황이 오면 특히 그렇다.
이란은 터키가 과거 오토만 제국의 영토인 이라크와 레반트(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을 아우르는 지역)에 대한 영향력 부활을 노리는 것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란과 수많은 전쟁을 치러온 러시아 역시 지난 10년 사이에 이란의 뒷마당에 대한 개입을 늘리고 있다. 이들 두 나라의 위협에 직면한 상황에서 이란으로선 미국 같은 역외 세력과 화해하는 게 안보에 유리해진다.
중동지역에서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란의 경쟁국이지만, 미국은 중동 전략상 사우디와 이란의 균형이 필요하다.
중국이 아시아를 관통해 유럽까지 잇는 실크로드의 부활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이란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데 좋은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베이는 "지정학적 저류는 더디게 흐르는 만큼 이를 반영한 각국의 정책이 형성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릴 수 있다"며 "그 사이에 이란과 미국은 계속 상호 적의를 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호 관계가 교차로에 선 두 나라의 장기적 국익의 상당수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했으나 이것이 각각의 국가적·지역적 당면 문제들을 얼마나 빨리 타고 넘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며 "만일 핵협정이 붕괴하면 막 시작한 양국 간 관계 구축 작업이 10년은 후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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