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서울대 교수 '목간에 기록된 고대 한국어'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지난 1980년 전북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사면(四面) 목간에 백제의 수사(數詞)가 기록돼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백제의 수사는 신라 수사와 표기법은 다르지만 발음이 유사해 두 언어가 비슷했다는 학설에 힘이 실리게 됐다. 반면 고구려 언어는 백제, 신라 언어와 다소 달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이승재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신간 '목간에 기록된 고대 한국어'(일조각 펴냄)에서 그동안 학계에서 거의 조명받지 않았던 미륵사지 목간을 해독한 결과를 실었다.
미륵사지 목간은 길이가 17.5㎝로, 함께 출토된 명문 기와 조각을 보면 716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면에 글자가 남아 있는데, 그중 1·3·4면은 한 줄만 기록했고 2면만 세 줄로 글자를 남겼다.
이 교수는 목간에서 '日古邑<셋째 글자는 현재 쓰지 않는 글자라 邑으로 표기>', '今毛邑', '矣毛邑', '新台邑'라는 글자를 밝혀냈고, 이 표현들이 모두 수사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邑'자를 주목했다. 이 글자는 우리나라에서 한자를 변형해 만든 것으로, 발음은 '읍'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日古邑'은 발음이 '일고읍', 즉 일곱이 된다. 또 '今毛邑'은 한자의 음이 아닌 훈(訓)으로 읽으면 '?털읍'이고, 이는 여덟이라는 것이다. '今'은 오늘날 훈이 '지금'이지만, '지금까지'를 의미하는 '여태'의 '옅'에 발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견해다.
이 교수는 "미륵사지 목간은 백제가 멸망한 뒤에 작성됐지만, 신라의 수사 표기법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백제 문자로 생각된다"며 "백제의 수사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신라어의 수사는 '一邑', '二尸', '三邑'처럼 한자 수사를 그대로 썼지만, 백제는 이두 형태로 수사를 적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백제어와 신라어는 수사의 발음 차이가 크지 않지만, 삼국사기를 토대로 유추한 고구려어의 수사는 발음이 백제어와 다르다"며 "백제어와 신라어가 남방계 언어라면, 고구려어는 북방계 언어라고 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그는 또 목간을 통해 한국에서 만들어진 고유의 글자가 바다 건너 일본으로 전파됐다는 사실도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고대 일본의 수도였던 헤이조쿄(平城京)에서 발굴된 목간에는 '石<石에서 위쪽의 '一'이 없는 형태. 현재 쓰지 않는 글자라 石으로 표기>'이라는 글자가 있다.
이 교수는 함안 성산산성,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나온 목간에도 '石'자가 있는데, 이는 단위 명사인 '섬'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제작 시점은 국내 목간이 일본 목간보다 빠르므로 일본으로의 글자 전래설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일본에서는 '石'자를 '口', '百', '名' 등으로 오독하는 실수를 범해왔는데, 의미상 섬인 경우가 많다"며 "초창기 일본의 문장을 백제 계통의 도래인이 담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616쪽. 4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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