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비용 고수익' 관찰예능에 몰려…방송국 파업 영향도"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아무리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지만 토씨 하나만 바꿔놓고 새것이라 주장하니 낯부끄럽다.
최근 중국이 우리나라 예능들을 베껴 논란이다. 물론 중국은 제목부터 세트장까지 그대로 갖다 쓰니 문자 그대로 표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예능들도 '한끗' 차이만 있을 뿐 연출자의 고민이 보이지 않는 기계적 모방이 난무해 중국을 욕하기가 부끄러워진다.
KBS 2TV가 지난 추석 연휴에 선보여 '국제적 민폐' 논란을 부른 '하룻밤만 재워줘'는 JTBC의 대표 예능 '한끼줍쇼'를 꼭 빼닮았다. '한끼줍쇼'는 국내에서 밥을, '하룻밤만 재워줘'는 외국에서 잠자리를 해결하는 미묘한 차이만 있을 뿐이다.
KBS 2TV '혼자 왔어요'는 20대 남녀가 사흘간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선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채널A의 '하트시그널'과, '줄을 서시오'는 핫플레이스 앞에서 일반 시민과 함께 줄 서서 대기한다는 점에서 JTBC '밤도깨비'와 흡사하다.
SBS TV '박스라이프'도 위 사례보다는 덜하지만 자사 모바일 브랜드인 모비딕의 인기 프로그램 '99초 리뷰'를 확장한 느낌이다.
추석 후에도 복제 프로그램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연예계 1976년생 모임을 내세운 KBS 2TV '용띠클럽'은 tvN 대표 예능들을 뒤섞은 느낌이다. 40대 또래 뮤지션들의 여행기를 담았던 '꽃보다 청춘' 페루 편, 그리고 여행과 쿡방(요리하는 방송)을 결합한 '윤식당'이 모방 대상이다. 출연진은 방송에서 시도하고 싶은 포맷을 이야기하면서 '윤식당', '삼시세끼', '한끼줍쇼' 등 타 프로그램을 아예 대놓고 언급하기도 했다.
SBS TV가 오는 28일 첫선을 보이는 '살짝 미쳐도 좋아'는 아직 베일에 싸여있지만, 연예인들의 사적인 취미 생활을 엿보는 형식은 이미 MBC TV '나 혼자 산다' 등에서 익숙하게 봐온 것들이다.
물론 예능의 자기복제 현상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음악·오디션 예능부터 연예인 가족 관찰 예능까지 '베끼기'가 트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 예능의 경우 KBS 2TV '복면가왕'과 tvN '수상한 가수', 엠넷 '프로듀스101'과 KBS 2TV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더 유닛' 등이 닮은꼴이다. 연예인 부부가 나오는 SBS TV '싱글 와이프'와 '동상이몽2', E채널 '별거가 별거냐'도 포장된 구호는 다르지만 내용은 똑같다.
방송가에서는 이러한 '서로서로 베끼기'가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 예능 홍보 담당자는 15일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이 활성화하면서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관찰형 예능을 많이 내놨는데 기대 이상의 인기와 이익을 얻게 되자 지상파도 같은 시장에 뛰어든 형국이 됐다"고 분석했다. 여행 포맷의 예능 등도 과거처럼 인력과 비용을 크게 투자하지 않고도 재밌게 뽑아내는 요령을 찾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방송가 관계자는 "최근 공영방송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정상적인 방송보다 임시방편 격의 프로그램이 늘어난 것도 '자기복제 활성화'에 조금은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lis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