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인정 '페르시아 만' 명칭 무시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이란의 핵합의 이행을 인증하지 않는다고 연설하는 도중 '아라비아 만'(Arabian Gulf)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이란을 더욱 자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중동 안보에 해를 끼친다고 비판하면서 "이란 정권은 아라비아 만과 홍해에서 (미국 선박의) 자유로운 항해를 위협한다"고 말했다.
아라비아 만은 이란이 매우 정서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용어다. 이란은 이곳을 '페르시아 만'(Persian Gulf)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수니 아랍 군주국이 모인 걸프 지역과 이란 사이에 있는 폭이 좁은 해역이다.
세계 석유 수송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중요한 바닷길이고, 바레인에 기지를 둔 미 5함대와 이란 해군이 종종 조우하는 군사적으로도 긴장이 첨예한 해역이다.
세계에서 가장 매장량이 많은 가스전이 있는 바다이기도 하다.
이를 아라비아 만이라고 칭하는 것은 이란에선 마치 동해를 일본해라고 하는 것만큼 민감하다.
이란 언론에선 사우디 등 걸프 지역 6개국의 모임인 걸프협력회의(GCC)를 페르시아걸프협력회의(PGCC)라고 쓸 정도다.
이 때문에 이날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대응한 대국민 연설에서 "그는 페르시아 만의 공식 용어조차 모른다"고 비난했다.
언론에서는 이 바다를 공식 명칭은 아니지만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의미를 띠는 걸프 해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곤 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아라비아 만이라는 용어를 써 이란의 신경을 노골적으로 자극한 셈이다. 이 해역에 대한 이란 정부의 통제권을 무시한다는 메시지도 함께 던졌다.
또 이란의 경쟁국이자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 등 걸프 지역의 아랍권 국가의 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실히 각인했다.
이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직후 핵합의 이행을 불인증한 것보다 아라비아 만이라는 명칭을 쓴 데 분노하는 글이 넘쳤다.
핵합의 불인증은 예상했던 바지만 이 명칭에 대한 이란 국민의 정서를 알면서도 감정적으로 공격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틀린 명칭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걸프 해역의 명칭을 두고 이란과 걸프의 수니파 왕정은 1960년대부터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그 이전엔 페르시아 만이라는 명칭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지만 1960년대 들어 아랍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걸프 지역에서 유전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논란이 가열됐다.
이와 관련, 유엔 사무처는 1999년 유엔의 공식 문서에 이 해역의 명칭을 페르시아 만이라고 쓰라는 지침을 내렸고 국제수로기구(IHO) 역시 '이란 만' 또는 페르시아 만을 공식 용어로 사용한다.
이에 대해 사우디를 위시한 GCC는 2010년 "아라비아 민족은 3천년 전부터 있었지만 페르시아는 16세기 사파비 왕조에서야 나타났다"며 페르시아 만은 역사적으로 왜곡한 이름이라고 반박했다.
UAE에선 저작물이나 인터넷 등에서 페르시아 만이라는 용어를 쓰면 불법이다. 미군도 여러 문서와 발표에서 아라비아 만으로 부른다.
미국지리학협회(NGS)는 페르시아 만을 인정하다 2004년 발행한 아틀라스 세계지도에서 아라비아 만으로 고쳐 이란 정부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그해 말 '역사적으로 통상적 명칭은 페르시아 만이지만 일부에선 아라비아 만이라고 칭한다"는 개정판을 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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