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아메리카 퍼스트'에 中 패권욕망 꿈틀꿈틀

입력 2017-10-15 09:01  

트럼프 '아메리카 퍼스트'에 中 패권욕망 꿈틀꿈틀

"美우선주의가 고립주의 띠면서 국제질서 공백"

中 문화·환경·통상·안보 등에서 '새 리더' 자처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장재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기존 국제합의를 깨는 쪽으로 나타나면서 원성을 산다.

세계질서를 주도하던 중심축이 흔들리는 데 대한 우려, 일방적인 협정 파기나 국제기구 탈퇴에 대한 배신감이 일단 주된 반응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가 이처럼 일부 고립주의 성향으로 나타나는 데 대해 다른 한편에서 반색하는 국가가 있다.

지난 세기의 굴욕을 터는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열망, 패권 탈환의 의지를 담은 '중국몽'(中國夢)을 국가 비전으로 내세운 중국이 그 주인공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1월 출범한 뒤 국제사회의 각종 약속을 저버릴 때마다 중국은 새 리더를 자처하며 애써 표정관리를 하지는 않았다.

중국은 미국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탈퇴 방침을 공식 발표하자 예상대로 대의명분을 들어 비판을 가했다.

방점은 중국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유네스코는 교육, 과학, 문화 영역에서 국제 협력을 이끌고, 세계 평화와 공동 발전을 수호했다"며 "중국은 계속해서 유네스코 업무에 참여하고, 다른 국가들과 함께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중국은 미국, 일본에 이어 유네스코의 세 번째 재정 부담국인 만큼 미국 대신 행동할 수 있는 입지가 넓어졌다.

미국 국무부는 유네스코 탈퇴 이유로 체납금 증가, 조직 개혁 필요성, 유네스코의 계속되는 반(反) 이스라엘 편견 등을 들었다.

교육, 과학, 문화, 세계평화 등 국제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자국 이익을 위해 버렸다는 점에서 세계리더의 역할에서 물러섰다는 지적을 받는다.

중국은 올해 6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한 후에도 유사한 태도를 내비쳤다.

개발도상국 지위를 주장하며 소극적이던 과거 주장을 버리고 협정 준수를 촉구하며 자국이 공백을 메울 뜻까지 내비쳤다.

중국이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이자 한때 기후변화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터라 더 괄목할 태도였다.

실제로 중국은 저탄소 산업에 돈을 쏟아붓고 국제 기후협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고 달려들며 환골탈태를 시도하고 있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이 지난해 재생 에너지에 투자한 금액은 880억 달러(약 99조원)로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중국은 2020년까지 이 분야에 3천610억 달러(약 407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무역장벽이 높고 외국 기업에 불공정하기로 첫 손에 꼽히는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 성향을 보이자 자유무역 수호자까지 자처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1월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이런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개막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보호무역은 어두운 방에 자신을 가두는 꼴이며 누구도 무역 전쟁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트럼프 대통령은 포럼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국 공업지대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폐기한 데 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도 재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무역질서가 흔들리고 불안이 확산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이를 국가위상 제고에 이용하려는 태세다.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과 일본 등 16개국이 참가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등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기구에 대항하려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해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추월한 지 오래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2015년 중국의 아프리카 수출량은 1천20억 달러에 달했다. 미국의 수출량은 2008년 1천130억 달러이던 것이 2015년 265억 달러로 위축됐다.

가장 최근인 이달 14일 미국은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 등 주요 5개국과 함께 이란을 상대로 체결한 핵합의까지 재검토에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의회에 대이란 제재복원 심의를 발동한 것이다.

합의의 다른 당사국, 합의준수 여부를 판정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반발했고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 흔들리고 있다.

중국은 관영 환구시보를 통해 이란 핵합의 준수는 중동평화와 국제질서 유지에 꼭 필요하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했다.

중국 관변학자들은 국제사회가 미국 외교정책의 연속성과 안정성,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도 의문을 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은 중국이 경제력, 군사력 증강과 함께 미국의 공백을 급속히 메워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스크바 국제관계연구소의 세르게이 수다코프 교수는 "미국이 지역화, 온건한 고립주의를 향한 길을 천천히 가고 있다"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유엔 분담금을 줄이려는 태도도 이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수다코프 교수는 "유네스코 탈퇴와 같은 사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제무대에 파견된 외교관들의 입에서도 이미 선도적 지위를 향한 중국의 뚜렷한 의지가 공공연하게 새어 나오고 있다.

중국 외교관인 치엔탕 유네스코 사무총장보는 최근 외교전문 잡지 '포린폴리시' 인터뷰에서 "중국은 국제적 책임을 지길 원하고 지구촌 수준에서 평화와 개발에 기여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최근 중국인들이 세계은행, 인터폴,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 각종 국제기구에서 고위 보직을 꿰차고 있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되고 있다.

소프트파워뿐만 아니라 하드파워에서도 주목되는 동향이 나타난다.

중국은 작년을 기준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운데 유엔 평화유지군에 가장 많은 병력을 지원한 국가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과연 세계의 리더가 될 능력이 있을지 회의적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기후변화나 자유무역 등과 관련해서는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과거 행동을 볼 때 새 리더로서 정통성이 있느냐는 의문의 골자이지만 선진국 가운데 과거사에서 자유로운 곳이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오염 물질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인 데다가, 기후변화 대응에 역행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국내외에 활발하게 짓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자유무역 혜택을 보면서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고 경제 보복조치를 하는 등 보호주의 배격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걸어왔다.

아울러 중국이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정치체제는 상층부 의도에 따라 시장경제가 언제든 왜곡될 수 있는 사회주의여서 완전한 자유무역 실현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서방 언론에서는 중국의 국제무대 리더십과 관련해 투명하지 않은 정치체계, 비민주적인 사회를 한계로 지적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rice@yna.co.kr, jangj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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