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언론인·조선족·장애인…시단 폭 넓히는 시인들

입력 2017-10-16 10:14   수정 2017-10-16 11:04

해직언론인·조선족·장애인…시단 폭 넓히는 시인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이러저러한 경로로 등단해 시인이라 불리는 이가 한반도 남쪽에만 수천수만을 헤아린다. 그중에서도 평균의 궤적을 훌쩍 벗어난 삶을 문장에 담아 시단을 풍요롭게 하는 시인들이 나란히 시집을 냈다.

윤재걸(70)은 군사독재 시절 해직언론인으로 세간에 알려진 인물이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동아일보에서 해직당하고 4년 뒤 신동아로 복직, 한겨레 창간에 참여했다. 1989년 평민당 서경원 의원의 밀입북 사실을 취재하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안당국의 수사를 받기도 했다.

언론에 반평생 투신했지만 일찌감치 시인이었다. 1966년 '시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한 그는 '후여후여 목청 갈아'(1979), '금지곡을 위하여'(1985) 등 두 권의 시집을 냈다. 30여 년만에 엮은 세 번째 시집 '유배공화국, 해남 유토피아!'(실천문학)에는 2008년 고향 해남으로 귀향한 이후 쓴 시 53편이 실렸다.

한적한 땅끝에서 10년을 보낸 그의 시에는 되찾은 고향 서정과 함께 현대사에 깊숙이 발을 담갔던 인생 역정이 뚜렷하다. 그에게 고향 해남은 저항과 혁명을 꿈꾸는 땅이다.

"해남이여, 변방의 일국이여/ 귀양다리 그대가 품어온 천년의 아픔 나는 안다// 해남이여, 오욕의 세월 속에/ 참숯이 되어버린 그대의 자존심 나는 안다.// 해남이여, 좌절과 절망 속에/ 참세상 못다 이룬 그대의 핏빛 분노 나는 안다.// 해남이여, 역사 속에 변치 않을/ 귀양다리 그대의 꿋꿋한 기개 나는 안다.// 해남이여, 저항의 세월 속에 감춰진/ 귀양다리 그대의 마지막 슬픔 나는 안다." ('유배공화국, 해남 유토피아!' 부분)

시인은 "'팩트에 살고 팩트에 죽는' 기자의 생리대로 지금껏 저는 참된 리얼리스트로서의 시인의 길을 걸어왔다"며 "앞으로도 그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라고 했다. 160쪽. 1만원.





이송령(34)은 한국 문단에 보기 드문 조선족 시인이다. 중국 하얼빈(哈爾濱)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유학한 뒤 2012년 한국에 들어왔고 현재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다. 올해 월간 '시see' 특별추천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그를 시로 이끈 건 출퇴근길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새겨진 시였다. "나의 시도 세상구경을 시켜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시를 쓰기 시작해 문단을 두드렸다. 그는 "처음 배운 글이 한글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글을 말하고 쓰는 '외국인'이었다"며 "내가 한글로 시를 쓰는 이유는 내 신분이 비록 지금은 '중국 조선족'이지만 한글을 통해 나의 영혼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펴낸 첫 시집 '나의 시는 아직 입원 중이다'(문화발전소)에는 자아성찰과 인간관계의 아름다움 등을 담았다. 모국이자 동시에 타국인 한국에서 시 쓰는 일에 대한 자의식도 곳곳에서 읽힌다.

"오 나의 시여/ 아직도 입원중이구나// 시에 대한 욕망의 링겔을/ 맞고 있구나// 뚝뚝 한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시가 시로 점점 풍부해지렴/ 퇴원을 하면 시를 만날 거야// 나의 시는 아직 입원중이다!" ('입원 중' 전문) 126쪽. 1만2천원.







김대원(48) 시인은 새 시집 '내가 어둠이라면 당신은 별입니다'(솟대)를 냈다. 1992년 '혼자라고 느껴질 땐 창밖 어둠을 봅니다'부터 여덟 번째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희귀병으로 전신마비·언어장애를 얻은 이후 35년간 시를 창구로 세상과 소통해왔다.

시인은 올해 장애인 문인을 대상으로 하는 구상솟대문학상을 받았다. 새 시집의 표제이자 수상작인 '내가 어둠이라면 당신은 별입니다'는 "가슴 시리도록 착한 저항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장애를 가리키는 시어 하나 없이, 차별에 완곡히 저항하며 극복을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내가 수라면/ 당신은 수틀이예요// 나는 아름다울 수 있지만/ 당신 없인 안돼요// 내가 어둠이라면/ 당신은 별입니다// 당신은 빛날 수 있지만/ 당신은 나 없이는 못해요// 우리는 따로 떨어져서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내가 어둠이라면 당신은 별입니다' 전문) 127쪽. 1만1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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