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원의 구속 연장 결정에 대해 정치보복이라며 '재판 불복'을 시사했다. 박 전 대통령은 16일 추가 영장 발부로 구속이 연장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심경을 밝히면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의 구속 연장 결정에 대해 "다시 구속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면서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재판 보이콧을 시사했다. 박 전 대통령은 또 재임 기간 대통령 권한을 남용한 사실이 없고,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적도 없다면서 거듭 무죄를 주장했다. 유영하 변호사 등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도 "재판부의 추가 영장 발부는 사법부의 치욕적인 흑역사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면서 전원 사임한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 측의 이런 반응은 여러 가지 우려를 낳고 있다. 우선 재판부가 유죄 심증을 굳혔다고 보고 유죄 판결을 막아 보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담당 재판부는 "재판 외적 고려 없이 구속사유를 심리해 구속영장을 재발부한 것"이라면서 "유죄라고 미리 판단했던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법원의 추가 영장 발부에 대해 '무죄 추정과 불구속 재판이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이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불구속 수사가 우리 형사소송법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것은 맞다. 하지만 재판부가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인용한 '증거인멸' 사유 또한 형사소송법 70조에 규정된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라 해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멍에는 제가 지고 갈 테니 모든 공직자와 기업인들에겐 관용이 있기를 바란다"는 말도 했다. 모처럼 보여준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도량이 빛을 잃은 것 같아 안타깝다.
보수 야당과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은 그동안에도 정치보복론을 제기하며 불구속 재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구속 이후 6개월 동안 별말 없이 재판을 받아오다가 갑자기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공소제기는 재임 시절 벌어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기소 이후 재판도 별다른 절차상의 문제 없이 공정하게 진행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보복 주장에는 명분도 설득력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전직 대통령으로서 법치주의를 준수하는 모범을 보이지는 못할망정 이를 부정하고 사법부의 권위조차 인정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유감이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저를 믿고 지지해주는 분들이 있고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테니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 대목은 적잖이 걱정스럽다. 국민에 대한 사과와 반성의 뜻은 표명하지 않은 채, 지지자들을 겨냥한 메시지만 내놓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변호인단이 전원 사퇴한 것도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변호인단이 입장을 번복하지 않는 한 재판 일정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통령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하면 당초 예상과 달리 연내 1심 재판을 끝내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가 신속히 법정에서 밝혀지고 관련자들이 엄정히 심판받기를 원하는 국민 여망을 저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은 남은 재판에 성실히 임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변호인단은 '변호인단 사퇴로 심리가 지연되면 그 피해가 피고인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재판부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권도 자중하는 것이 좋다. 벌써 박 전 대통령의 정치보복 발언을 놓고 국감장에서 거친 설전이 벌어졌다. 모두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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